김용필 미스터트롯 이후 밝힌 충격 사연… “사실 가수가 되려고 한게 아니다!”

가수 김용필의 충격적인 소식이 알려졌습니다. 김용필은 미스터 트롯을 통해 이름을 알려 인기를 얻었지만, 화려한 모습 뒤에 감춰졌던 진짜 인간 김용필의 삶은 그야말로 너무나 힘겨웠던 역경 그 자체였는데요. 

그는 부모님이 4남매를 키우며 생계를 위해 몸부림을 치는 모습을 보며, 자신은 절대로 저렇게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벌지는 말자고 다짐했지만, 자신 역시 먹고 살기 위해 몸이 부서지도록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며 살 수밖에 없었고, 이후 미스터 트롯은 사실 가수가 되려고 도전을 했던 게 아니었다는 충격적인 비화를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낭만 가객이라는 별명과는 달리, 낭만은 조금도 생각할 수 없었던 김용필의 삶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어린 시절, 4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던 김용필은, 경상도 사나이셨던 아버지와 세심한 성격의 어머니 중 유독 어머니의 외모와 성격까지 모두 빼닮아, 좋아도 좋은 내색을 안 하고, 싫어도 싫은 내색을 절대 안 하는, 너무나 고지식한 아이였다고 하는데요. 

그렇게 화면에서 비춰지는 그의 부드럽고 세심한 중년의 매력은, 사실 어릴 적부터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던 성격이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는 어릴 적, 욕심을 부릴 수 없었던 어려운 가정 형편상, 둘째로서 항상 동생들을 먼저 살피며 자랐는데, 장난기가 많았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슨 일을 하더라도 앞만 보고 갈 뿐 뒤를 돌아볼 줄 몰랐던 성격 탓에 길을 잃은 적도 참 많았다고 하는데요. 

그가 어렸던 70년대만 해도, 서울에도 길에서 흑염소를 파는 사람이 그렇게 많았는데, 다섯 살 때 한 번은 그 염소를 따라갔다가 길을 잃었지만, 부모님의 지인이 발견하고 다행히 집으로 안전히 돌려보내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또한 어릴 때는 집에 문이 있으면, 그 문을 타고 올라가서 천장까지 올라간 뒤 뛰어내리는 등, 장난기가 워낙에 다분해서, 오죽하면 옆집 아저씨가 아이 열 명 키우는 것보다 용필이 하나 키우는 게 더 힘들다고까지 우스갯소리를 했을 정도라는데요. 

그렇게 개구쟁이었던 김용필은 학창 시절이었던 92년에 학생회 활동을 하던 중 캠프를 갔던 어느 날, 자신의 인생에 대한 결심을 담은 글을 쓰게 되는데, 그 글의 내용을 보면, 나는 신념과 용기가 있다 나는 성실하다 나는 부모님의 뜻을 받드는 효자이다 나는 한 가지 이상의 전문적인 기술을 연마한다 등 어린 친구가 썼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처리된 내용들로 가득 차 있었고, 글의 내용이 중년이 된 지금의 김용필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있어, 그의 반듯한 모습이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닌, 본래 어릴 적부터 선천적으로 타고난 성격임을 말해주기도 했습니다.

김용필은 당시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부모님을 보면서 생긴 인생의 목표가 있었는데, 부모님이 4남매를 키우시며 먹고 사는데, 너무나 오랫동안 고생을 하신 바람에, 나는 적어도 나중에 가정을 꾸리면 저토록 먹고 살기 위해서 돈을 벌지는 말자 이왕이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벌자라고 생각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는데요. 

김용필은 눈시울을 붉히며, 철 없던 아들의 눈에도 부모님이 고생만 하시며 사는 게 느껴졌음을 고백했는데, 어린 시절부터 자식들을 위한 부모의 희생을 이토록 절실히 깨달으며 살아온 김용필의 마음은 얼마나 찢어지도록 아팠을까요?

이후 성인이 된 그는 프리랜서 아나운서로 20여 년간 일을 하게 되는데, 아나운서들은 kbs나 mbc 같은 방송사의 정식 직원으로 채용되는 안정적인 공채 아나운서가 있는 반면, 김용필처럼 어느 한 직장에 소속되지 않고, 이런저런 케이블 방송과 각종 행사 진행 등 섭외가 들어오는 대로 일당을 받는 수많은 불안정한 프리랜서 아나운서들이 있기 때문에, 아나운서를 꿈꾸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안정적인 방송사 공채 아나운서를 꿈꾸지만, 요즘처럼 아나운서 전 문학원을 다니지 않으면 공채 아나운서로 뽑히기가 힘든 시대의 김용필은, 집안 형편상 학원을 다니지 못해 끝내 공채 아나운서는 되지 못하고, 프리랜서 방송인으로 여러 방송을 떠돌며, 리포터나 mc 기자 등으로 불안정한 삶을 이어가게 됩니다. 

이에 대해 김용필의 부모님은 아들을 학원에 보내지 못해 방송사 공채 시험에 자꾸 떨어진 것 같다며,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아들에게 미안했다고 털어놓았는데요.

당시 두 부부는 집에 같이 앉기만 하면 그때 얘기를 쓸 정도로 아들에게 그렇게 해줬어야 되는데 하며 소갈이를 많이 했고, 당시 그 외에도 여러모로 후회스러운 일들이 많았지만, 김용필은 부모님께 입고 먹여주기만 하면 되는 거라며, 자신은 괜찮다고 말하는 효자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아낌없이 주고도 한없이 미안한 것이 부모의 마음인데 김용필의 부모님도 여느 부모들처럼 그토록 아들에게 한없이 미안했고, 김용필도 표현은 서툰 아들이지만, 그렇게 부모님께 진심을 다한 고백을 했던 것인데요. 

김용필은 자신도 결혼을 해보니, 이 시대의 중년 여성들이라면 누구나 엄마와 아내로서 고단한 삶을 살게 된다는 걸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고, 어머니에게도 젊은 시절 곱디 고왔던 여자로서의 삶이 있었지만, 남편과 철부지 자식들에게 젊음을 전부 바친 채 그 모진 세월을 보내고도 미안하다 말하시니, 자신은 어머니를 자신의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사랑할 것이라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김용필은 비록 방송사 공채 아나운서가 되지는 못했지만, 멋진 목소리와 정확한 발성을 위해 피나는 노력 끝에 다양한 방송에서 활동했고, 엄청난 열정으로 매일 쉬지 않고 취재를 다니고, 생방송에 출연해, 결국 2006년에 mbc 연말 시상식에서 특별상, tv 부문 리포터상을 수상하기도 했는데요.

비록 mbc 공채 직원은 되지 못했지만, 열심히 하는 자는 이렇게 방송사에서도 직원이 아니더라도 알아주고 인정을 해준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그는 이 일로 엄청난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는 원래는 주로 보도 프로그램에만 출연했지만, 그러다 무슨 멘트를 해도 발성이 너무 딱딱해지는 습관이 생겨버린 바람에, 이것을 고치고자 엄청난 노력 끝에, 이후 결국 생생 정보 같은 예능 프로의 나레이션 성으로도 발탁되기도 했고, 예능 쇼 행사의 진행자로도 섭외가 되는 등 활동 영역을 넓힐 수 있었다는데요.

방송 진행자로는 라디오 dj이만 빼놓고는 전 분야를 모두 섭렵했고, 심지어는 영화에도 몇 편 출연을 했다고 하니, 김용필은 공채 아나운서만 되지 못했지, 사실은 다방면으로 너무나 많은 곳에서 전천후로 활동을 해온 능력 있는 방송인이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활동을 해온 그에게도 시련이 닥쳐오는데, 프리랜서로서 그 역시도 코로나를 피해갈 수 없었고, 직장에서 월급을 받는 입장도 아닌 상황에서, 나이 50을 앞두고 앞으로 얼마나 방송 일을 더 할 수 있을까 불안함이 닥쳐 오게 되는데요. 

이때 그를 위로해 준 것은 바로 노래였는데, 노래를 부르고 있다 보면 신기하게도 복잡했던 마음이 정리가 되고, 뭔가 치유를 받는 묘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당시 그가 그렇게 노래를 좋아하자, 주변에서는 미스터트롯1부터 오디션에 참가해 보라고 권유도 하게 되지만, 김용필은 중년의 가장이었기에 섣불리 도전할 수는 없었다는데요. 

그가 만일 20대의 젊은 나이였다면 실패를 하고 넘어지더라도 금방 일어설 수 있겠지만, 50대를 앞두고 가장으로서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었다 보니, 하던 일을 그만두고 섣불리 도전했다가는 만일 실패하면 다시는 돌이킬 수가 없게 되기 때문에, 미스터 트롯에 도전하기까지 김용필은 많은 고민과 걱정에 빠지게 됩니다. 

김용필은 얼마 전 미스터트롯에 출연한 계기를 밝혔을 때도 사실 가수가 되려고 나온 건 아니었다는 놀라운 고백을 하기도 했는데요. 

그는 말하길 용기에 대한 확인 차원이었다. 방송 수명 연장에 대한 절실함도 있었고 가장으로서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인생이 이렇게 바뀌더라 가수가 될 줄 몰랐다라며 20년 넘게 해온 일이 끝나는구나 싶었다. 가수를 하게 될지 다시 다른 먹고 살 일을 찾아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복합적인 생각 때문에 눈물이 났다. 만약에 코로나가 안 터졌다면 노래를 할 생각을 했을까 싶다. 

가장의 압박이 있었다. 주변에 생활비 구하러 다니는 사람이 많았다. 내 정신은 어떻게 지켜내지 앞으로 내가 무슨 일을 하지 내가 뭘 해야 하지? 라는 생각을 계속했다. 그런데 노래를 하다 보니까 마음이 치유되더라 노래가 묘한 힘이 있더라 부르는 사람도 위안을 얻는다라고 속내를 털어 놓았습니다. 

김용필은 또한 내가 나이가 몇 살이다 그런 생각을 안 한다 이번 달에도 일정이 없는 날이 이틀 밖에 없었다. 적응해 가는 수밖에 없다 감사한 일이다 혼자 하는 게 노래가 아니더라 내가 걸어가는 길에 많은 팬분들께 에너지를 많이 드리고 싶다며 팬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는데요. 

더불어 김용필은 어떤 가수로 기억되고 싶냐는 질문에 앞으로 가수로 뿌리를 내려야 하지 않나 내가 노래만 한다고 해서 가수가 되는 건 아니니까 앞으로 어떤 노래를 들려드릴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 가수 김용필이 부르는 노래로 보답을 드리고 싶고 앞으로 계속해서 꾸준히 노래하는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새롭게 인연을 맺게 된 팬분들께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전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가족이 갖는 이미는 배에 보면 밭이 있는데 깊숙이 닻을 내리고 있으면 아무리 센 파도에도 배가 떠내려가지 않는데 항상 살면서 힘들 때는 여러 고민을 하면서 내가 차라리 이렇게 해버릴까 이걸 그냥 놔버릴까 여기까지만 신경 쓰고 말까 하는 생각도 들겠지만 아무리 센 바람이 불어서 떠내려갈 상황이 오더라도 마치 배에 닷처럼 나를 멀리 가지 않게끔 붙들어주는 것이 바로 가족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어린 시절 어려웠던 가정 형편에서도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보며 효도를 닿을 것임을 다짐했고 후에 성인이 되어 아나운서 공채로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피나는 노력 끝에 인정을 받아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했으며, 많은 고민 끝에 미스터 트롯에 참가했을 때도 매번 간절함에서 우러나오는 진정성 있는 무대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던 바르고 반듯한 남자 김용필. 

그럼 그가 이제는 더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을 받아 가수로서도 성공하게 되기를 바라고 또한 앞으로의 인생에서도 아무리 거센 파도가 오더라도 계속해서 꿋꿋이 헤쳐나가는 멋진 가장의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라며 쉽지 않은 인생을 살아온 가수 김용필에게 여러분의 따뜻한 응원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