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연인이다”에 출연했던 출연자가 이번 폭우로 실종된 후, 결국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참변을 당한 안타까운 출연자는 바로 2019년에 방송에 출연했던 70세 장병근 씨로, 이틀 전 경북 예천 산사태로 66세 아내의 시신이 발견된 데 이어, 실종되었던 남편마저 시신으로 발견되면서, 결국 이들 부부의 삶은 거대 토사에 파묻혀 죽음을 당하는 비극을 맞이하게 되었는데요.
당초 아내의 시신이 발견되고, 장병근 씨가 아직 실종 상태였을 때만 해도, 그의 아들 장 모 씨는 아버지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현장을 지키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많은 이들로부터 안타까움을 자아냈습니다.
결국 아버지마저도 시신으로 발견되어, 아들 장모 씨는 이번 일로 부모 두 분이 동시에 거대 자연으로부터 희생을 당하고, 싸늘한 죽음으로 돌아온, 그 어떠한 말로도 표현조차 할 수 없는 너무나 충격적인 비극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더구나 이번 폭우로 경북 예천에서 실종된 여덟 명 가운데, 현재까지 발견된 세 명의 시신 중 두 명이 장 모 씨의 부모인 것인데요.
당초 장 씨의 아내가 이틀 전 발견되었을 때는 집에서 20미터가량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었는데, 장병근 씨는 자택에서 100미터 가량 떨어진 지점에서 발견되어, 아내보다 더 긴 거리를 한없이 떠내려간 것으로 확인돼, 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습니다.
장병근 씨는 효자면 백석리에서 오후 3시 37분에 119 특수구조단에 의해 발견이 되었는데, 장 씨 부부가 원래 살았던 집은 산사태로 통째로 쓸려내려가 형체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고, 수색 당국은 첫날 진입이 어려워 일일이 수작업으로 수색 작업을 벌이다가, 다음 날 포크레인 등 중장비를 동원해 진흙을 곳곳마다 뒤집은 끝에 장 씨를 찾을 수 있었는데요.
수색 당국 관계자는 수색 속도가 느려지며, 시신조차 못 찾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컸다며, 혹시 생존해 계실 수도 있는 실종자를 찾기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지만, 산사태의 규모가 너무나 컸던 바람에 생존해서 돌아오는 기적은 안타깝게도 발생하지 못했습니다.
산사태 발생 당시에 대량의 흙더미가 일순간에 떠내려오면서 장병근 씨 부부의 집을 덮쳤고, 갑자기 덮친 토사의 무게는 상상을 초월하는 압도적인 규모였다 보니, 장 씨의 가옥을 한순간에 무너뜨리면서 집 안에 있던 장 씨 부부가 흙더미와 건축물에 압살을 당하고 말았는데요.
장병근 씨가 과거 나는 자연인이다에 출연했을 당시에는 개그맨 이승윤이 찾아가 촬영을 진행했는데, 집은 컨테이너로 된 가건물이 없고 이승윤이 이 높은 산 중에 어떻게 컨테이너를 지었냐고 묻자, 장병근 씨는 조각을 하나하나 운반해서 위에서 조립해서 지은 것이라 말했었습니다.
그는 산중에서 생활하려면 모든 게 간단하고 단순해야 한다며, 집도 실용적으로 지은 것이라고 말했는데요. 건물을 산중에 지었다 보니 아무래도 안전보다는 비나 눈을 피할 수만 있게 지었던 것이었는데, 만일 일반 주택처럼 튼튼하게 지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라는 아쉬움도 있지만, 그 많은 건축 자재를 높은 산중으로 옮기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일이고, 만일 어떻게든 한다고 해도 인건비 등 비용이 상당히 많이 드는 데다가, 건물을 아무리 튼튼하게 지었다 하더라도 산사태의 규모가 워낙 컸기 때문에 참사를 피하기는 아마도 어려웠을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또한, 장병근 씨는 건물에 담쟁이 덩굴을 심어서, 여름이면 담쟁이 덩굴이 잎을 피워서 햇빛을 차단하게 했고, 이로 인해 한여름에도 3도 정도 시원해지는 효과가 있다고도 말했었는데요.
집 안에는 그가 취미로 만든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20년 전에 가족들과 지리산에서 약 1년간 옛 선조들처럼 생활했던 사진도 걸려 있었는데, 이 사진은 지금은 성인이 된 첫째가 초등학교 6학년, 막내가 초등학교 3학년이었을 때 찍었던 사진으로, 당시 장병근 씨는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가축과 사람의 힘만으로 가족들과 농사를 짓고 사는 삶을 시도했었다고 합니다.
그는 도시 생활에 지쳐서 지리산으로 왔고, 아이들을 대안학교로 보냈으며, 옛 선조들처럼 살면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그렇게 살아봤지만, 이들을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결국 이상과 현실은 하늘과 땅처럼 큰 차이가 있었고, 지금 와서 보니 참 바보스럽게 살았다고 느끼며, 이제는 현실에 충실하려 한다고 말했었는데요.
이후 그는 가족들과 결국 지리산을 떠나 경북 예천으로 옮겨오게 되면서, 이것이 오늘날 참변을 당한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이었는데, 그로부터 5년 후 다 큰 아이들은 꿈을 찾아서 도시로 떠나갔고, 아내는 아이들을 따라가면서 자신 혼자만 남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번 참사 때 아내도 함께 참변을 당한 것으로 보아, 아이들이 이제는 완전히 독립해 아내가 다시 남편에게 돌아와 살았던 것으로 추정이 되고 있는데요.
그는 당시 방송에서 산중에서 생존 가능한 생존식도 소개했는데, 쌀가루를 반죽해서 와플 기에 올리고 화로를 이용해 구우면, 산속에서 아주 간단하고 짧은 시간 내에 만들 수 있는 생존식이 완성된다며, 이 음식을 청국장, 콩과 함께 먹으며 영양 보충에 훌륭하다고 소개를 하기도 했습니다.
산에서 20년을 사는 동안 생존까지 염두에 두고 생존식도 만들어 먹곤 했지만, 장병근 씨는 안타깝게도 결국 생존을 손 쓸 틈도 없이 갑자기 일어난 산사태에 안타깝게 떠나가게 된 것인데요.
그는 젊은 시절 가업을 잇기 바라셨던 의사 아버지의 뜻대로 의대에 응시했었지만, 두 번이나 낙방했고, 컴퓨터 개통학과에 진학해 졸업 후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애플 컴퓨터 조립일을 하다가 독립해서 사업을 하면 잘 될 수 있을 것 같았고, 아버지께 당당히 성공하는 아들의 모습도 보이고 싶어 미군들이 거주하는 동두천에 가게를 열어서 판매했지만, 대기업 제품들에 밀려 사업에는 완전히 실패를 하게 됩니다.
그 일로 인해 스스로를 미워하고 또 위로하며 다시 취직을 하게 된 장병근 씨는 서울 도심 지역에 자동차 정비소에서 일을 하게 되지만, 자동차 매연과 대도시의 대기 오염으로 일을 했던 10년 동안 한 달에 한 번씩 혀에 구내염이라는 염증이 생겨 물만 먹어도 따갑고 아팠으며, 그로 인해 물도 안 모금 못 마시고, 음식도 먹을 수 없었다고 하는데요 결국 안 되겠다 싶었던 그는 대도시의 공해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에 자연에서 살고자 하는 마음이 커져갔고, 학창 시절에 산악부 활동을 하면서 산을 참 많이 다녔는데, 아내도 원예 쪽으로 전공을 했고, 아내랑 아이들과도 산을 참 많이 다니면서 야영도 많이 했다 보니, 그때부터 자연을 동경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의대 진학과 사업 모두 실패하고, 취직했다가 병까지 얻게 되며, 잘 살아보려 아무리 애를 써도 행복해지지 않았던 현실의 장병근 씨는 큰 용기를 내 결국 자연으로 들어가며 동경하던 삶을 살게 되는데요.
그렇게 가족들과 자연에서 살게 된 그는 초반만 해도 여기서 영원히 행복할 줄 알았지만, 성인이 된 아들, 딸은 원하는 인생을 살고 싶다고 하며 모두 도시로 가버렸고, 원래는 같이 지내다가 혼자 지내게 되니 처음에는 서운한 마음도 있었지만, 가족끼리 자연에서 다 함께 산다는 건 부모로서의 욕심이었다는 걸 뒤늦게야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가족들이 떠나고 혼자 나마 힘들어하던 자연인은 도시의 삶이 괴로웠던 것도, 산에서의 불편함도, 가족을 보낼 때의 깊은 상실감도 모두 자신의 욕심 때문이었다는 걸 깨달으며, 마음에 있던 욕심과 모든 것을 다 내려놓게 되는데, 그렇게 아이들도 좋아하는 거라고, 자신도 좋아하는 거라며 다 내려놓으니 마음이 진정으로 편해지게 되는데요.
현재 그의 자녀들은 좋아하는 적성대로 아들은 컴퓨터 쪽으로 일하고 있고, 딸은 영화사 쪽에서 디자인 쪽으로 일하고 있으며, 이제는 본인들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게끔 아빠로서 밀어주고 있다는데, 이에 대해 말하길, “과거 저도 제 아버지의 꿈이었고, 의사인 아버지께서는 본인이 하는 일을 같이 했으면 하는데, 저는 엉뚱한 길로 나갔죠.
하지만 돌이켜 보면 나름대로 제 삶을 살았거든요. 그래서 제 아이들한테도 내가 원하는 바를 강요하는 건 정말 잘못된 방법이구나라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라고 말했고, 자제분들과는 잘 지내고 있냐는 이승윤의 질문에는 아이들을 믿고 열심히 응원을 해주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자연인의 모습을 본 이승윤이 자신도 좋은 에너지를 받는 것 같다고 말하니, 장병근 씨는 예전에는 무언가에 욕심이 있었지만, 이제는 세월이 지나가니까 모든 게 내려놓아지는 것 같고, 앞으로도 그저 지금처럼 쭉 편안하게 생활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그렇게 칠순의 나이에서야 인생의 큰 깨달음을 얻고, 자연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생활하고 있던 그였지만, 자연으로 들어가 살겠다는 의지는 그만 그를 자연에 무서운 재앙에 목숨까지 잃는 안타까운 참변으로 몰고 가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어이없이 목숨을 잃은 그의 사연을 알고 나니 참으로 안타까운 데다가 본인 한 사람뿐만이 아닌 아내까지 함께 참변을 당했으며, 아들이 아버지의 생환을 기다렸다는 소식마저 들렸으니, 너무나 가슴 아픈 사실이 아닐 수 없는데요.
자연과 함께 살고자 했던 장병근 씨는 결국 죽음을 맞이했던 순간마저도 영원히 자연 속으로 파묻혀 들어가며 삶을 마감했다는 사실이 참으로 안타까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여러모로 복잡한 생각도 함께 드는 것 같습니다.
모쪼록 안타까운 사고를 당한 장병근 씨와 그의 아내가 하늘에서 편히 쉴 수 있기를 바라고 슬퍼하고 있는 장병근 씨의 자녀분들께 심심한 위로를 전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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