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대의 불륜 커플로 악명을 떨치고 있는 홍상수가 본인의 신작 영화 우리의 하루가 2023년 4월 칸 국제영화제에 초청되면서 6년 만에 칸 영화제 초청인 만큼 홍상수 감독과 김민희가 동반 참석할지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와중 두 사람이 불륜을 인정한 지 7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여전히 지옥에서 살고 있는 홍상수 본처의 안타까운 고백이 화제가 되고 있는데 그녀가 고백하길 억장이 무너져서 하루에도 열댓 번 심장을 친다. 우리를 지금 이 지옥 속에 빠뜨려 놓고 남편은 너무 행복한 표정을 해가지고 김민희를 쳐다보고 있다.
남편은 지금 첫사랑에 빠진 소년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느낄 수 있는 건 남편이 언젠가 큰 소리를 치며 돌아올 것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린 정말 잘 살았기 때문이다 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오늘은 세계적인 영화제 칸에 초청받아 축하해야 하고 응당 축하받아야 할 일이지만 가정이 있는 영화계의 거장과 젊은 여배우가 도대체 왜 이 땅으로 살고 있는지 지금부터 홍상수 본처의 안타까운 고백을 통해 낱낱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악몽의 시작은 지난해 9월 30일부터다 남편은 그날 따라 유난히 신경질적이고 안절부절했다. 방학이라 집에 와 있던 딸아이도 아빠가 이상한 걸 느꼈는지 아빠 어디 아픈 거야 병원에 가봐야 하는 건 아니야 라며 걱정을 했다. 늦은 밤 남편이 딸에게 할 얘기가 있다며 아파트 놀이터로 데리고 나갔다. 느낌이 이상해 몇 분 뒤 나도 따라 나갔다. 그런데 그때 남편이 이렇게 말을 하더라 사랑하는 여자가 생겼고 그 여자와 가정을 이루고 싶다고 그리고 그날 놀이터에서 남편은 딸에게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하는데 많은 이성을 만나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것은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다라고 말이다.
결국 남편은 혼자 산책을 다녀오겠다는 말을 남긴 채 그 길로 집을 나가 휴대전화도 받지 않았다. 그러다 하루는 남편의 일기장을 발견했는데 내용이 굉장히 구구절절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그녀의 얼굴을 보는 순간 힘든 게 사라진다며 마치 천국에 있는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일기장을 보는 순간 내가 두 사람의 행복을 깨는 나쁜 여자가 된 것 같았다.
그런데 남편이 그 일기장을 집에 두고 간 게 마음에 걸렸는지 하루는 딸에게 일기장을 가져다 달라고 전화를 했다고 하더라 그때 나는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 이해해 얼마나 힘들었어 라고 말이다. 하지만 남편은 묵묵부답이었다. 이후 출강하던 학교 교수직에도 안식년을 제출했다는 걸 알게 됐다.
한편 예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김민희가 빈소에 왔었는데 그때는 그저 남편과 영화를 촬영하는 중이라 감독에 대한 예의를 지키러 왔다고 생각했었다. 그 모습이 지금도 선명한 게 무표정한 얼굴로 새침하게 앉아 있었다. 그런데 하루를 꼬박 앉아 있어 의외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당시 그녀가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퍼즐처럼 맞춰지는 느낌이다. 역시 불행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라고 했습니다. 시간을 거슬러 1985년 동갑내기인 홍상수 감독과 본천은 미국 유학 중에 만나 스물다섯 살의 나이에 결혼해 슬하에 딸 한 명을 두게 됩니다.
이후 유학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홍상수가 갑자기 영화를 찍겠다고 선언하자 주변에서는 모두 미쳤다고 말렸지만 본처는 홍상수 감독의 재능을 믿었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홍상수 감독은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이라는 영화로 신선 충격 파격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했고 그리고 이후 수많은 영화를 만들어 한국 영화계의 거장이 되는 동안 홍상수의 곁을 지킨 것은 다름 아닌 본처였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2016년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을 했었는데 경제적인 활동을 할 수 없을 때도 저는 단 한 번도 남편에게 잔소리를 한 적이 없어요. 남편의 예술적인 모습을 좋아했고 존경했어요. 남편은 늘 제게 특별했지요라고 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본처는 홍상수의 어머니 즉 시어머니가 치매를 앓을 때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극진하게 돌봤었는데 그래서 홍상수도 이에 감동을 받고 이버릇처럼 말했던 게 집 근처 강남구청 앞에 효고문을 세우자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홍상수 감독은 2015년 영화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를 통해 인연을 맺은 스물두 살 연하의 배우 김민희와 연인 사이가 되고 말았고 심지어 홍상수는 본처와 딸에게 사랑하는 여자가 생겼다. 그 여자와 가정을 이루고 싶다고 고백하고 산책을 다녀오겠다는 말을 남긴 채 그 길로 집을 나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홍상수는 본처에게 이혼을 요구하며 조정을 신청했으나 본처는 일곱 차례에 걸쳐 소송 송달을 받지 않은 것으로 대응했고 그러자 결국 홍상수는 이혼 소송까지 제기하게 됩니다. 그러다 2017년 홍상수는 불륜설 보도 9개월 만에 공개적으로 기자들 앞에서 자신들의 간통을 인정하며 다음과 같이 고백하게 되는데 이런 걸 여기서 얘기할 자리인지 모르겠는데 우리 두 사람은 사랑하는 사이고 우리 나름대로 진솔하게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간 언론에 얘기하지 않은 건 이런 얘기를 굳이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서입니다. 개인적인 일이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다 보니 다들 아시는 것처럼 얘기하고 있기에 더 이상 나서서 얘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때 김민희 역시 당당하게 불륜을 인정하며 다음과 같이 고백하게 되는데 진심을 다해 만나고 사랑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노인 또 다가올 상황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영화에만 관심을 두고 봐주실 수 있을까 하는 바람이 생겼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교제설 보도가 나간 후 약 9개월 만에 두 사람이 직접 관계를 설명하자 그간 언론을 통해 알려진 불륜설이 불륜으로 확정된 순간 장례는 술렁거렸고 수많은 카메라에서 일제히 플래시가 터졌습니다.
심지어 이때 두 사람은 자신들의 부적절한 관계를 인정받고 싶다는 취지의 발언까지 했었는데 이와 관련해 홍상수가 고백하길 사람들마다 처지나 성격 때문에 사안에 대한 의견이 다 다르다 내 주위나 김민희 씨 주위 사람들의 반응은 전혀 다르니까 말이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니 사안에 대해 전혀 다른 의견과 태도를 갖는 듯하다 그래서 나는 대중들의 반응을 동의할 수 없고 또한 이런 사안이 구체적으로 피해를 준다거나 법에 저촉되는 게 아니면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나 역시 남들에게 그런 대우를 받고 싶다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두 사람이 당당히 불륜을 인정한 후 한 기자가 홍상수 본처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의 심정을 묻자 다음과 같이 고백하게 되는데 이혼은 하지 않겠다. 여전히 평소와 다름없이 일을 계속하며 지내고 있다.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행복했던 기억이 나를 버티게 하는 것 같다.
좋았던 기억이 있는 사람들은 남편이 외도 후 돌아와도 잘 살 것이라는 믿음이 있지 않나 실제로 그런 경우도 많기 때문에 희망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너무 참담한 게 남편은 지금 첫사랑에 빠진 소년 같다. 김민희 씨에게 뭐라고 하면 아내가 그러니까 헤어졌지라는 말을 들을까 봐 아무 말도 못하고 있다.
이처럼 나는 하루에도 열두 번도 더 생각이 바뀐다 억장이 무너지다가도 을의 남자들이 겪는 에피소드이겠거니 마음을 다 잡는다 하지만 이내 다시 심장이 내려앉는다 몇 달 전부터 습관적으로 법정 스님의 법회 동영상 증문직서를 반복해 듣는다 친구의 추천으로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마치 내게 하는 말인 것만 같더라 남편을 온전히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내가 남편의 가장 큰 지분을 가지고 있을 뿐이라는 말이 와닿았다.
또 남편을 남이라고 생각해라 남편이라고 생각하면 없애고 싶은데 남이라고 생각하면 그 사람이 고마워진다는 말도 감정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됐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한 기자가 홍상수 본처와 연락이 닿았을 때 그녀는 악몽을 꾼다고 했습니다. 현재 홍상수가 또다시 칸 영화제에 초청을 받아 두 사람이 칸에 동반 출국할 거라는 소식이 보도되자 본처는 한참을 울었다고 합니다. 본처가 고백하길 두 사람은 이기적인 게 두 사람의 사랑보다 중요한 건 없다는 의미 같다. 나는 이렇게 힘든데 그녀는 행복해 보인다.
사랑 돈명에 다 갖췄으니까 그리고 김민희가 최근 다시 글 쓰기를 시작했다는 뉴스를 봤다. 남편의 로망이 글 쓰는 여자와 사랑하는 빠지는거였기 때문일 거다. 내 남편의 사랑이 그녀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구나 생각했다.
최근 남편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때 내가 남편에게 상수 씨 내가 꼭 이혼을 해줘야지 되겠어 라고 하니까 남편이 내게 이러더라 그래주면 우린 좋지 30년이면 충분히 같이 잘 살았잖아 라고 하는데 그때 우리라고 하더라 30년을 같이 산내게 그럼에도 이 모든 것이 스쳐 지나가는 것이다며 그녀의 목소리에는 간절함이 묻어 있었다고 했습니다.
긴 글 끝까지 읽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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