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고 서세훈이 별세한 가운데 23살 연하의 재혼녀가 큰 충격을 받고 혼절해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관계자에 따르면 “서세원 씨가 캄보디아에서 사업을 했는데 아내분도 자주 동행을 했다. 사이가 굉장히 좋아 보였던 부부였는데 배우자가 별세했으니 충격을 안 받을 수 있겠나 그래서 너무 황망해하고 있고 현재 서세원의 빈소는 아내와 지인이 지키고 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또한 전부인 서정희 역시 전 남편 서세원의 별세 소식을 듣고 처음에는 가짜 뉴스라 믿고 싶다며 그의 별세 소식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하는데요.
이처럼 오늘은 32년간 서세원의 포로로 살며 남편만 믿고 살았지만 결국 재혼녀에게 남편을 떠나보낸 뒤 분노하고 말았던 서정희 그녀의 가슴 아픈 인생에 대해 말해보고자 합니다.
서정희 시련의 시작
고등학생 시절 모델로 데뷔한 서정희는 방송가에 매우 촉망받는 인물로 배우 활동까지 전향했다면 사실상 톱스타에 충분히 들어갈 정도의 아주 예쁜 미모를 갖춘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고 서세원과 결혼을 발표한 시절 그녀의 나이는 겨우 스무 살이었고 그리고 이내 연예계 생활을 은퇴한 뒤 한 남자의 아내로 평생을 살았으며 대중들은 그녀가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줄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2015년 30년 넘게 서세원의 부인으로 살아온 그녀가 그간 결혼 생활이 어느 정도 힘들었을지 추측도 할 수 없을 만큼의 충격적인 진술을 하게 되는데 당시 그녀는 열아홉살 때 서세원에게 순결을 잃었고 절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나는 그것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결혼했다. 그리고 이후에는 남편이 무서워서 이혼할 엄두조차 못 내고 32년간 서세원에게 붙잡혀 살았다.
이후 나는 별별 일을 다 겪어야 했지만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사실을 철저히 숨기고 결혼 생활에 대해 줄곧 긍정적으로만 이야기해 왔다 tv에 출연할 때 교회에서 간증할 때 책을 쓸 때도 한결 같았다. 그 이유는 세상의 이목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물론 매 순간이 악몽 같았던 건 아니다.
나름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삶을 살았으며 이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승승장구하는 남편을 돕고 책을 쓰고 인테리어 분야의 경력도 꾸준히 쌓았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좋은 학교에 들어가 공부를 열심히 해 행복했고 많이 못 배운 나의 한을 풀어주기도 했다.
서세원 잠깐의 변화
하지만 결혼 생활 내내 남편에게 수없이 당했고 그럼에도 남들 앞에서는 그저 행복한 척 흉내만 내며 살아야 했다. 그러다 하루는 허무맹랑한 꿈을 꿨다. 남편을 목회자로 만들어 올곧은사람으로 변화시키겠다고 말이다. 그 심지에 불을 붙이기만 하면 바뀔 사람이라는 믿음을 가졌다.
그러자 실제로 잠시였지만 이때는 행복한 순간이 찾아오기도 했다. 40일 작정 새벽 기도를 할 때인데 남편과 함께 집으로 돌아와 따끈한 커피와 벨그를 먹으며 드물었지만 남편이 내 손을 잡고 기도해 주기도 했다. 당시 나는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렸던가라고 생각하며 1년을 또 1년을 버텼다.
하지만 그런 기적은 계속 일어나지 않았다. 남편은 이내 나를 다시 힘들게 했고 그리고 그 수치스러운 모습들이 만천하에 공개되어 나는 불쌍한 여자라는 꼬리표가 붙고 말았다. 그리고 이 무렵 남편에게는 내연녀가 있었는데 내가 그걸 문제 삼으며 사과를 요구하자 당시 서세원이 나에게 했던 말이 그 여자를 건드리면 가만 안 두겠다. 그리고 만약 이혼을 요구하면 천국으로 보내겠다고 말한 뒤 집을 나가버렸다.
결국 찾아온 불행
19살의 순결을 읽고 어쩔 수 없이 한 결혼이었지만 어쨌든 32년 동안은 남편만 믿고 살아왔다 사람들이 나에게 무슨 욕을 하고 어떤 비난을 가해도 가정과 남편을 지키고 싶었다. 하지만 남편의 여자 문제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사실 내가 32년간 말도 안 되게 비참하게 살아왔다고 해도 그럼에도 정말 바랐던 건 가정을 지키는 것이었기 때문에 당시 남편이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만 하고 다시 돌아오면 모든 걸 용서하려고 했으나 그 여자에게 간 후 남편은 끝내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나는 남편에게 이혼 소송을 했고 그리고 그동안 내가 당했던 모든 일들을 언론과 경찰에 다 말했다 그러자 그제서야 남편이 연락이 오는데 하지만 나는 응답하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만나주지 않으니까 당시 남편으로부터 매일 수십 통씩 전화와 문자 메시지가 왔었는데 사실 무서웠다. 그래서 접근금지 신청을 했고 그리고 이게 가처분이 받아들여져 결국 남편은 내게 전화나 문자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이혼 후 서정희 안타까운 근황
그렇게 32년간의 결혼 생활을 정리하고 이혼 직후 두 달여 동안 미국 생활을 했었는데 이때 태어나 처음으로 누구의 간섭도 없이 마음대로 생활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솔직히 기쁘지 않았다. 그저 결혼 생활에 실패하고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은 50살 여자가 있었을 뿐이었다.
결국 그 뒤로 정신과 트라우마 치료를 1년 6개월 동안 받아야 했다. 그런데 치료받을 때도 결혼 생활 이야기만 하면 울컥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럼에도 트라우마 치료 교수님은 2~3시간씩 내 이야기를 들어주며 할 수 있다고 격려해 주셨다.
그리고 이제는 그렇게 살지 말라고 안아주고 충분히 혼자서도 잘해낼 수 있을 거라고 용기를 주셨다. 하지만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아마 그때 엄마가 곁에 없었더라면 나쁜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멀리 떠나거나 극단적인 생각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하곤 했다.
그렇게 이혼하고 7년 동안 엄마와 살았는데 그때 엄마를 좋아하게 됐고 또 엄마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깨달았다. 엄마는 수시로 철부지 늙은 딸에게 밥을 짓고 영양 많은 건강식을 챙겨주면서 기뻐하셨다.아픈 딸에게 뭔가를 해줄 수 있다는 것 자체로 행복해하는 눈치였다.
그렇게 나는 엄마 덕에 상처 난 마음이 조금씩 아물 수 있었다. 그렇게 점차 이혼의 굴레에서 나오니 어느 순간 여기가 빛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혼의 원인은 내 책임도 없지 않다. 대중에게 내조 잘하고 아이 잘 키우는 모습만을 보였지만 솔직히 나에게는 숨겨진 반한 기질이 있었다.
그녀의 홀로서기
잘 참다 한 번씩 올라올 때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대성통곡을 해서 그를 힘들게 하곤 했다. 그리고 또 생각하면 부연 설명이 필요했던 것 같다. 나는 단순한 사람이다. 울다가 사탕을 주면 울음을 뚝 그치는 어린아이를 떠올리면 된다 사소한 것이라도 좋아하는 것을 하면 껑충껑충 뛰며 기뻐하는 게 나란 사람이다. 아무튼 이혼 뒤 홀로서기는 나를 성장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예전에는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로 살다 보니 정작 나 서정희는 없었는데 홀로 서고 나서야 비로소 나를 발견하게 됐다. 그리고 그 사람 덕분에 아들과 딸이라는 인생에서 가장 큰 선물을 얻었기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의 원망은 없다.
자식들 덕분에 32년 세월을 충분히 보상받았다고 생각한다 라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고 서세원이 생전 마지막 인터뷰에서 고백하길 대중의 얼굴이 널리 알려진 사람은 한 번 미운털이 바뀌면 좀처럼 헤어나기 힘들다 그럼에도 이혼 후 새 가정을 만난 건 운명이고 더 없이 행복하다 무엇보다 한갑에 탄생한 딸아이는 내 삶의 전부다 가장 힘들고 고된 인생의 기로에서 나에게 빛을 안겨준 천사다 그 아이 덕분에 내 삶의 열정을 다시 불태울 수 있는 동력이 생겼다.
나는 방송인으로 살다 한순간 모든 걸 다 잃었지만 이 아이를 만난 걸로 개인적으론 충분히 보상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온갖 어려움을 견디며 캄보디아 사업을 따는 것도 알고 보면 어린 딸을 둔 아버지의 절실함으로 이해하시면 된다 물론 이혼과 재혼이 맞물리면서 사생활에 관한 문제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공인으로 물의를 일으킨 부분에 대해 이 자리를 빌어 진심으로 사죄드린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히로에락이 늘 붙어다닌다 누구라도 피할 수 없다. 사랑과 기쁨 슬픔과 미움과 용서의 반복 그게 인생이 아닐까 싶다 라고 했습니다.
긴 글 끝까지 읽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최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