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디바로 유명한 가수 현미가 별세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현미는 고 이봉조 작곡가와 사이에서 두 아들, 이영곤과 이영준을 낳았습니다. 이영곤은 가수 곤이로 활동한 적이 있었으며 현재는 미국에서 부동산업을 경영하고 있습니다. 이영준은 가수 원준희의 남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미의 빈소는 서울 중앙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었으며, 이영곤은 취재진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이영곤은 어머니는 대중가수로 알려져 있었지만, 집에서는 평범한 엄마로서 자신과 연락을 자주 하며 건강을 챙기라고 말씀하셨다고 밝혔습니다.
혼자 가시게 된 어머니의 죽음은 제 인생에서 큰 의미를 갖게 될 것 같습니다. 자식 둘이 있고 많은 식구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혼자서 떠나시게 되어 너무 안타까운 기분입니다. 어머니는 항상 행복해야 한다는 말과 함께 자주 문자를 보내주셨는데, 주변 사람들이 제 어머니와 나누는 대화를 보며 여자친구냐고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어머니는 우리 형제와 연락을 자주하는 것을 유일한 즐거움으로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많은 국민들이 어머니를 추모하고 안타까워하는 것을 보며 깜짝 놀랐습니다. 어머니가 우리 국민들의 마음속에 깊이 남아서 그런 가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한편, 어머니의 두 아들은 고 이봉조의 호족에 속하지 못해 재산 상속을 받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이후로는 이봉조와의 재산 분쟁을 예상하여 아버지가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별세한 때, 저는 아이들과 함께 맨발로 도망쳤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저를 억울하게 생각하지는 않느냐, 분하지는 않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머님과 20년을 함께 살았고 두 아들도 낳았으며, 영원한 부를 선물해준 분이 왜 밉을 수 있겠느냐며, 오히려 불쌍하고 가슴이 아파진다고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저와 헤어지고 13년 동안 외롭게 혼자 살다가 아무도 없는 곳에서 눈을 감으셨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옆에 있었다면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고현미와 이봉조의 인연은 참으로 기묘한 인연입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21살의 현미가 미군 위문 공연에서 무대 무용수를 하다가 방송을 망쳐서 대신해 대타를 띄었던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후로 가수의 길을 걸으면서 이봉조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때 현미는 쇼 단의 메인 가수였지만, 이봉조는 현미의 월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신출내기 밴드 마스터였기 때문에 처음엔 현미는 이봉조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고 합니다.
당시 쇼 단장은 마스터와 메인 가수 사이가 틀어지면 쇼를 망치게 될까 늘 노심초사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쇼 단장이 구상한 작전 중 하나는 이봉조와 현미 사이를 좋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두 사람은 나이트 클럽에서 함께 춤을 추며 분위기를 띄우기로 결정했습니다.
당시 춤을 출 때는 손바닥 사이에 손수건을 끼우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이때 이봉조는 현미의 손을 맨손으로 잡았습니다. 이봉조는 춤을 출 때 현미의 발을 밝기 일쑤였지만, 이후로 뭔가 솔직하고 어딘가 순수한 매력이 있는 것 같아서 이봉조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현미는 이봉조와 함께 1집을 작업하며, 1962년에는 미국의 대가수 내킹골의 곡에 현미가 직접 작사한 가사를 입힌 유명한 곡 ‘밤안개’를 발표하여 단번에 스타덤에 오르게 됩니다. 이처럼 일과 사랑을 모두 이루며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그녀는 그 행복이 마냥 영원할 것만 같았지만, 안타깝게도 그리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당시 이봉조와 결혼 날짜를 잡았으나, 이상하게도 결혼식 날짜를 계속 연기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처음 보는 여자가 현미를 찾아와, 이봉조의 진짜 부인이고 딸도 2명 있다는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됩니다. 이 말을 듣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현미는 이미 임신 8개월 차여서 유산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봉조와 얘기해보라는 생각으로 일단 그 자리를 떠납니다.
그래서 현미는 이봉주와 결혼을 하고 둘의 삶을 함께할 생각으로 모든 것을 다 적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이봉주가 자신을 놓치기 싫어서 가짜 이혼 서류를 만들어 보여준 것으로 밝혀졌고 그 후 8년간에도 이봉주는 현미와 본처 집을 왔다 갔다하면서 두 집의 살림을 함께 관리했습니다. 현미는 이러한 사실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누군가 이봉조가 아이 넷을 두고 현미를 속이고 있다는 말을 전화로 전해주었습니다. 현미는 처음에는 그런 일이 없다고 말했지만, 다시 알아보니 이봉조가 75년부터 현미와 함께 살면서 본부인의 집에도 왔었고, 본부인과 사이에서 두 명의 자녀를 더 낳았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러한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면서 현미는 더 이상 이봉조와 함께할 수 없다는 결심을 하고 이혼하게 됩니다.
현미는 잠옷 차림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배우 엄앵란의 집으로 도망갔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전 남편 이봉조도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봉조는 바람에 미친 듯이 쫓아와서 고 신성일과 싸움을 벌였습니다. 이후 현미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본처로 돌아가기를 요구했고, 이봉조는 참 창피했다는 듯이 미안해하며 헤어졌습니다.
13년이 지난 어느 날, 현미는 전 남편 이봉조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는 아들이 병원에 입원 중이라며 현재 병안을 앓고 있었습니다. 현미는 예전과는 달리 이봉조의 모습이 완전히 변해있어서 놀랄 수 없었습니다. 이봉조는 당당했던 그 모습을 잃고, 당뇨로 인해 수척해진 채 현미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현미는 전 남편의 변화된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이 들었다고합니다. 그녀는 미국에 있는 아들에게 급히 연락하여 이봉조를 다시 모셔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봉조도 현미 곁에 있기를 원했기 때문에 두 사람은 함께 미국으로 가기로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며칠 후, 신우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그는 이봉조가 심장 마비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현미는 실감이 나지 않아 TV를 틀어보았고, 뉴스에서 이봉조의 비보가 나온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전 남편과 함께할 수 없다는 사실에 슬퍼하며 울었습니다.
이봉조가 56세의 젊은 나이에 혼자 눈을 감았다는 사실에 현미는 너무나 안타까워하며 슬픈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어느 날, 이봉조의 본처에서 합장을 제안하는 전화가 왔습니다. 이에 대해 현미는 이봉조의 본처가 세상을 떠난 후 20년 동안 행복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참 안쓰러워하고, 합장을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또한 자신이 세상을 떠날 때는 아들이 살고 있는 미국에 묻혀달라는 요청을 했습니다.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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