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가 말하길 매 맞으며 큰 자식은 아버지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형벌을 받는 백성은 임금의 정책을 따르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공자의 말처럼 부모는 자식을 돕는 조력자가 되어야 하지, 자식의 일거수일투족에 개입하여 조종하려고 해서는 안 되며 그리고 행여라도 부모의 마음에 맞지 않고 현실과 다소 거리가 있는 선택을 하더라도 자식은 자식의 삶이 있으니 다룰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오늘의 주인공 사유리 역시 한국에 대통령을 비하했다는 이유로 사람들로부터 강한 비난을 받고, 또한 남자친구 집에 찾아가 부모에게 아들을 달라고 하며 결혼도 하지 않은 그녀가 일본으로 건너가 출산했음에도 무조건 그녀의 결정을 지지해주는 사유리 그녀의 부모님 지도 같은 인생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긴 글이니 시간 나실때 천천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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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한 어린시절 사유리
1979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사유리는 어린 시절부터 굉장히 독특한 면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엄마와 마트에서 달걀을 사고 그 달걀이 혹시나 병아리가 될까? 싶어 무려 한 달 동안이나 뱃속에 넣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본인의 고백에 따르면 “학창 시절 공부를 못해도 너무 못해서 하루는 엄마에게 “엄마 나는 공부를 정말 못 하는 것 같다.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고 마치 프랑스 말을 하는 것처럼 아무 말도 안 들린다.”라고 하자, 그때 그녀의 어머니가 “괜찮아. 다른 거 하면 되지. 공부가 인생의 다가 아니야. 그리고 꼴찌도 어떻게 보면 끝에서 1등이야.”라고 말하며 긍정적으로 다독여 주었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어머니의 격려 덕분에 이후부터는 완전히 공부에 손을 놓게 되었고 하지만, 학급 친구들은 그런 모습이 못마땅했는지 당시 누구도 그녀와 대화하지 않아, 어린 사유리가 친구가 없어서 햄스터와 비둘기와 대화를 하며 지내게 됩니다. 그런데 하루는 사유리가 없는 틈에 평소 그녀를 싫어했던 누군가가 유일무이한 친구였던 햄스터를 천국으로 보내버리자, 마음의 상처를 너무 크게 입어 당시 등교도 거부하고 혼자 대모까지 하곤 했습니다.
유학 중 만난 한국친구
결국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고등학교는 일본이 아니라 영국으로 유학을 하러 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영국에서도 마찬가지 그녀가 말만 하면 친구들이 비웃자, 항상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이때도 늘 혼자 지내야만 했습니다.
이후 대학교 때는 일본 기독교 대학을 다니다가 미국으로 1년간 유학을 하러 가게 되었고, 이때 처음으로 마음이 맞는 친구가 생겼는데 그건 바로 한국인 친구였습니다. 그렇게 룸메이트였던 한국인 친구 덕분에 미국에서만큼은 외롭지 않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한 번은 그 친구와 함께 코리아타운에서 순대와 떡볶이를 먹었는데 난생처음 느껴보는 맛에 홀딱 반해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세상에 있구나!하고 이후 아침, 점심, 저녁을 오로지 순대만 먹게 됩니다.
그런데 한국 친구가 한다는 말이 “사실 미국에서 먹는 순대는 순대도 아니다. 한국에 오면 훨씬 더 맛있는 음식이 많다. 너도 한국에 오면 좋겠다.”라고 하자, 그래서 그녀가 그렇게 맛있는 음식이 진짜 있나? 싶어 마침내 한국에 들어오게 됩니다.
순대때문에 온 한국 그리고 남자친구
이처럼 순대 때문에 한국에 들어온 그녀는 이후 연세대학교 한국어 학당에서 1년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때도 그녀가 공부를 너무 못해서 다른 친구들은 다 한국말을 잘하는데 본인은 당시 할 줄 아는 말이 “먹고 싶다.” “자고 싶다.” “자유가 좋다.” 1년 동안 이 말밖에 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그녀에게도 난생처음으로 사랑이 찾아오게 되는데, 당시 헬스클럽을 다니다가 잘생긴 남자에게 첫눈에 반해 고백도 그녀가 먼저 하면서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그렇게 한국인 남자친구와 사랑하며 하루하루가 정말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그 남자가 단 3개월 만에 도망을 가버리자, 도망간 남자의 마음을 돌리고 싶어서 당시 아침 8시에 그 남자의 부모님 집에 찾아가서 “아들 주세요.
아들 주세요.”라고 했었습니다. 훗날 그녀의 고백에 따르면 “지금 생각해도 그때는 내가 미치지 않았나 싶다.”라고 했습니다.
남자친구 이유로 미녀들의 수다 오디션
그런데 그 남자친구가 헤어지기 전 했던 말이 “사유리는 외국 사람이니까, 미녀들의 수다에 나왔으면 좋겠다.”라고 했었습니다. 이후 헤어지고 나서 생각을 한 게 남자친구는 도망갔지만 “내가 만약 미녀들의 수다에 나가면 다시 나에게 돌아올 수 있겠다.”라고 생각해 이 방송에 오디션을 보러 가게 됩니다.
그런데 오디션장에 가보니 자신과 같은 외국인 친구들이 무려 몇백 명이나 몰려왔고, 그리고 하나같이 한국말을 잘하고 얼굴은 또 얼마나 예쁘던지 그냥 이대로 가다간 경쟁력이 없겠다 싶었던 그녀가 당시 오디션에서 인터뷰하는데 다음과 같이 말을 하게 됩니다. “미녀들의 수다, 지금까지 쭉 봤는데 왜 이렇게 재미없어요? 더럽게 재미없어요.
제가 나오면 더 재미있을 텐데….”라고 하면 사실 본인이 재미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그냥 아무런 이야기를 던졌습니다. 하지만 당시 제작진들이 새로운 느낌이 있는 것 같다라며 그녀를 합격시키게 됩니다.
방송 실수로 공식 사과 요구
그렇게 TV에 나오면 헤어진 남자친구가 나를 그리워하지 않을까? 싶어 도전한 오디션의 합격으로 마침내 사유리의 방송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수많은 카메라와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단 한 번도 서본 적이 없었던 그녀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다음과 같은 실수 아닌 실수를 하게 됩니다. 당시 이 프로에서는 외국인 출연자들에게 퀴즈로 “대통령이 사는 곳을 뭐라고 부를까요?”라는 문제를 냈고, 그러자 이에 외국인 출연자들이 “청와대”라고 답하지 못한 채, 도서관, 청계천, 청대문 등에 엉뚱한 대답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사유리가 “노무현 씨 집”이라고 답하게 됩니다. 그러자 한국인 출연자들도 일제히 박장대소하고 기립까지 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그녀를 칭찬했습니다. 하지만 이를 지켜본 일부 사람들이 대통령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며 사유리를 강하게 비판하고 방송국 측에 공식 사과까지 요구하게 됩니다. 이와 관련해 그녀가 고백하길 “사실 이때 이 방송을 보면 내가 아무 생각 없이 행복해 보이는데, 하지만 화면과 다르고 속은 울고 있었다.
나의 말 한마디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큰 상처를 주는 건 아닌가? 싶어 방송하는 게 너무 두려웠다. 또한 생각보다 아픔이 커서 당시 몇 개월 동안 집에만 가면 계속 울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녀는 이 프로를 통해서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이를 계기로 평소 어둡고 소심한 성격이었던 그녀가 활발하고 재미있는 모습으로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저승사자같은 존재
그렇게 미녀들의 수다의 인기에 힘입어 이후에는 사유리의 식탐 여행이라는 단독 음식 프로그램까지 맡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때도 그녀가 4차원답게 나름 맛집이라고 소문난 집에 찾아가서 “음식의 맛이가 없어요.”라고 솔직하게 말하자, 당시 음식점 사장님들에게 사유리는 저승사자와 같은 존재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그녀의 4차원적인 캐릭터로 이후에도 수많은 방송에 나와 외국인 연예인 중에서도 특히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아이 출산을 고백
그런데 2020년 11월 결혼도 하지 않은 그녀가 아이를 출산했다라는 소식을 전하자, 그야말로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놓게 됩니다. 사실, 그녀는 예전부터 자신의 최종 꿈이 어머니가 되는 것이라고 여러 방송을 통해 밝혔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본인이 나이가 있으니까 임신을 못 할 수도 있으므로 걱정이라는 이야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국에서는 아직 익숙지 않은 자발적 비혼모 출산이라는 선택하자, 대중들은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이와 관련해 그녀가 고백하길 “내가 41살 때 여자의 마법이 안 나왔다. 걱정돼서 산부인과에 갔더니 내 자궁 나이가 이미 48살이라고 하더라. 그러면서 곧 마법이 끝난다고 하는데 그럼 이제 아기도 못 낳는구나 싶어 눈앞이 깜깜해졌다. 그리고 이 무렵 정말 사랑했던 사람이 있었는데 몇 년 동안 사귀었다가 이별했다가를 반복했었다.
나는 어떻게든 빨리 결혼하고 싶고 아기도 갖고 싶었는데, 그 남자는 아직 결혼할 생각이 없고 싫다고 하더라. 그런데 하루는 엄마에게 나의 이런 답답한 마음을 이야기했더니 엄마가 하는 말이 ‘아이를 갖기 싫다고 하는 남자한테 자꾸 아기를 갖고 싶다고 얘기하는 건 그건 아주 나쁜 행동이다’라고 하더라.
아무튼 결국 그 남자와도 완전히 이별했고, 이후에는 새로운 사랑을 한다는 게 쉽지 않더라.”라고 했습니다. 한편 그녀는 예전부터 아기를 너무 갖고 싶어서 30대 시절 혹시 몰라서 난자를 따로 보관했었습니다.
그러다 앞서 얘기한 대로 마법이 나오지 않아 병원에 찾아갔더니 당시 의사로부터 “지금도 늦었는데 지금 이 시기를 놓치면 평생 아기를 못 가진다.”라는 말에 결국 정자를 기증받아 시험관 아기 시술을 받아 비혼모의 신분으로 출산까지 했던 것이었습니다.
또한 당시 정자 기증자의 인종과 국적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오직 건강과 EQ만 신경을 썼었습니다. 그런데 건강과 EQ가 높은 정자를 선택하고 보니까 서양인 기증자의 정자였고, 그래서 지금의 ‘젠’이 서양인의 얼굴로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두 번 다시 TV에 나오지 못할 수 있던 상황
그녀가 고백하길 “사실 내가 이러한 선택을 했을 때 사람들에게 욕을 아주 많이 먹거나, 방송국에서는 사유리를 출연금지시켜서 두 번 다시 TV에 나오지 못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다른 일을 알아봐야지 싶었는데, 그런데 젠과 함께 방송에 나오다니 정말 신기하다. 그리고 사람들이 나에게진짜 용기 있다라고 하는데 사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내가 무슨 용기가 있지?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아이가 없는 삶을 포기할 용기가 없었을 뿐이고, 그저 아이가 너무 가지고 싶었다. 그리고 젠을 처음 봤을 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예쁜데, 사실 보자마자 첫눈에 이만큼 사랑에 빠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정말 이 아이가 내 배 속에 있었나?싶어서 그저 신기한 마음이 더 컸다.그런데 요즘은 젠이 너무 예뻐서 겁이 날 때가 있다.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지?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마치 내 심장을 밖으로 꺼내서 들고 다니는 것 같다.
누가 이 심장을 만지거나 다치게 하면 안 되는데 하고 걱정하며 보호해주고 있는 느낌이다. 한편 나는 친구와 만나서 10만 원어치 음식을 먹었을 때 내가 5만 5천 원 내고 친구에게 4만 5천 원 내라고 할 수 있는 인생을 살고 싶다. 젠도 마찬가지다. 남을 위해 약간의 손해를 볼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반대로 몇 퍼센트도 손해 보기 싫어서 머리를 굴리고 어떻게든 자기의 이익을 챙기려고 욕심부리는 건 비겁한 사람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젠의 다른 아이들과 얼굴이 달라서혹시나 차별당하지 않을까?걱정해 주는데, 그런데 ‘나는 젠이 차별당하면 어쩌지?’라는 걱정보다 오히려젠이 다른 사람을 차별하는 사람으로 크면 어쩌지?`하는 걱정이 더 크다.”
마지막으로
“내가 어려서 차별을 당해봤기에 누구도 차별하면 안 된다는 걸 알고, 다른 사람의 아픔을 같이 느낄 수도 있어야 한다. 물론 그 상처가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클 수 있지만 그때는 내가 옆에서 함께 생각하고 아파하면서 지켜주면 된다. 그래서 차별을 당하는 것보다 차별하는 사람이 될까 봐 두렵다. 그리고 우리 부모님은 나의 결정은 무조건 지지해 주시는데, 이와 관련해 어린 시절 부모님에 대한 인상적인 이야기 하나를 소개하면, 우리 반에 아버지가 안 계신 친구가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한 친구가 그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엄마가 아빠 없는 너랑은 놀지 말래.’ 그 말을 들은 친구가 교실에서 혼자 울고 있었고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무례한 친구에게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냐?’고 다그쳤다. 그러자 그 친구가 이번에는 나에게도 비슷한 말을 하는데 ‘사유리 너랑도 못 놀아. 우리 엄마가 바보랑 놀면 옮는대’라고 하더라. 그래서 결국 속상한 마음에 울면서 집에 갔는데 엄마가 내 이야기를 듣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래! 그럼 엄마도 바보니까, 같이 울어버리자.’ 그러고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잊어버렸다. 이처럼 나의 긍정적인 태도는 부모님에게 배운 것이다. 돌이켜보면 그날의 바보는 우리가 아니라 그 친구였다.
이처럼 나에게는 지도가 하나 있다. 젠을 키우면서 우리 엄마가 그려놓은 지도를 읽어나가는 느낌이 든다. 어린 시절 자기 부모의 모습이 담긴 지도 말이다. 만약 부모님이 나쁜 사람이었다면 ‘이렇게 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는 지도일 테고, 좋은 사람이었다면 ‘이대로 살아야지’라고 생각하는 지도일 테다. 나는 우리 엄마가 지도에 그려준 길 그대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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