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결혼과 동시에 시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시집살이가 당연시 되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집살이는 최근 들어 세대 차이나 부부 갈등의 주원인으로 지목되며, 부정적인 인식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를 반영하듯, 시집살이를 배경으로 한 수많은 미디어 매체에서, 시어머니란 존재는 며느리를 대상으로 온갖 갑질을 일삼으며 가정에 평화를 해치는 악당처럼 묘사되기도 합니다.
현재도 이런 고부 갈등을 소재로 한 각종 tv 드라마와 예능은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과거 한 유명 여배우가 결혼과 동시에 무려 두 명의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고 털어놓아 화제가 된 바 있습니다.
1962년생, 올해 나이 60세인 이혜숙은 1978년 미스 해태 선발대회에서 우수상 수상과 함께, 같은 해 mbc 공채 10기 탤런트로 선발되며 연예계에 데뷔했습니다.
현재는 각종 드라마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며 중년 여배우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지만, 그녀는 미인대회 수상 경력이 증명하듯, 데뷔 당시 청순 가련형 미모로 80년대 mbc 간판 여배우로 활약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후 충무로로 무대를 옮긴 이혜숙은 흥행은 물론 연기력까지 인정받았는데,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영화 “은마는 오지 않는다”의 원래 역으로는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여자연기상 및 몬트리올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이렇게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넘나들며 주연급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던 이혜숙은 1992년 4월, 결혼과 동시에 잠정 은퇴를 발표했습니다.
이혜숙은 영화 “낙타는 따로 울지 않는다”에 출연하면서, 현재 남편 한기은을 만나 결혼에 골인했습니다. 당시 이혜숙이 그 영화에 출연할 때 서른 살이었는데, 한기은은 33살로 영화계에서도 상당히 젊은 사장으로 유명했습니다.
이혜숙은 남편 한기은과 대학교 때 친구의 아는 오빠로 만나, 이후 영화 “낙타는 따로 울지 않는다”를 통해 인연을 맺어 연인으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이혜숙은 영화 “‘낙타는 따로 울지 않는다’는 저의 평생 반려자를 만나게 해준 영화예요. 원래 남편을 대학교 때 친구의 아는 오빠로 만났어요. 제가 친구랑 워낙 친했고, 당시에는 남편과 서로 콧방귀를 뀌는 사이였죠. 그러다가 30대가 넘어서 우연히 영화 작업을 하면서 남편을 다시 만났고, 그때 서로 남녀로 보게 되었어요”라고 했습니다.
이혜숙과 한기은은 미국 로케이션 중에서 연인 사이로 발전하게 되었고, 1992년 4월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이들을 만나게 해준 영화의 제작자가 바로 그녀의 남편과 시아버지였는데 당시 미국에서 촬영하는 등 제작비가 많이 들며 적지 않은 손해를 입었음에도 시아버지는 “제작비로 돈은 날아갔지만 내 며느리는 들어왔잖니 그깟 돈이 뭐가 문제냐”라며 며느리 이혜숙을 많이 아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이해숙은 평생 두 분의 시어머니를 모셨다고 해 주위를 놀라게 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녀의 남편은 시아버지의 누나, 그러니까 시고모님 슬하에서 어린 시절을 자랐던 것입니다. 이혜숙은 “어버이날이면 두 집에 가야 했어요. 아들 노릇을 한 거죠. 시고모님인데 저희는 어머님이라 불렀어요. 그래서 결혼하자마자 두 분의 시어머니가 생긴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이혜숙은 “여행을 다 모시고 가는데 같이 가면 미묘한 상황이 생겨요. 시어머니 팔장을 먼저 껴야 하는지, 시고문인 팔장을 먼저 껴야 하는지 눈치가 보이는 거예요. 두 분의 적지 않은 기 싸움이 있는데 시 고모님이 연세가 많으시니 먼저 챙겨드리는 걸 이해하시겠거니 챙겨드리고 요령 있게 어머니도 챙겨드려요. 처음에는 사실 많이 힘들었어요.” 라고 속내를 털어 놓았습니다.
그래도 이해숙은 장점도 있다고 밝혔는데요 양쪽에서 선물을 받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해숙은 “어머니가 코트를 주면 여기에선 가방을 줘요. 가장 좋은 점은 우리 딸한테도 그러셔요”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이혜숙은 요즘도 같이 식사를 하면 묘한 기싸움이 있지만 자신은 결혼 28년 차가 된 만큼 시간이 흘러 많이 편해졌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혜숙은 남편에 대해 속아서 결혼했다고 말해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속플이쇼 동치미에 출연했던 이혜숙은 결혼 당시 반대가 심했다며 “저는 절대 반대하는 집안과 결혼하고 싶지 않았었어. 너무 좋지만 헤어졌어요”라고 말했습니다.
합의 하에 헤어졌지만 남편은 이혜숙을 포기할 수 없었고 마지막으로 이별 여행을 제안했다고 합니다. 이에 이혜숙은 “제가 하도 안 만나주니까 그 명목하에 만나자고 한 거예요. 갔는데 그때 저한테 죽겠다고 하더군요. 안 만나주면 죽겠다고 했어요. 술을 못 하는 사람이 벌컥벌컥 마시고 쓰러지고 약까지 먹어 놀랐죠” 라고 남편의 목숨을 건 구의 과정을 설명했습니다.
결국 이혜숙은 남편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결혼했지만 “저는 그렇게 시댁 어른들하고 사는 삶이 고달프고 힘든 줄 몰랐어요. 이 남자는 자기만 쏙 빠지고 오로지 엄마 편이었어요. 효자인 줄 알았더니 마마보이였죠. 이 남자 하나만 보고 갔는데 신혼 때 날 죽도록 외롭게 만들었어요. 저는 그때 정말 속아서 결혼했네요”라고 털어놨습니다.
이혜숙은 이렇게 외롭고 답답했던 결혼 생활의 돌파구로 연기 복귀를 결심했습니다. 시아버지의 응원 속에 그녀는 활동을 재개했지만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배역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제 나이는 오히려 더 많은 역할을 깊이 있게 할 수 있는 때예요. 앞으로 폭넓은 연기자로 거듭나고 싶어요. 한 역할 한 역할에 의미가 남다르게 느껴져요.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라며 당당히 주어진 역할을 소화했고, 중년 여배우들이 점점 자리를 잃고 있는 와중 자신만의 이미지를 구축하여 꾸준히 주연급 배역을 맡고 있습니다.
당시 결혼과 출산 후에 겨우 30대 중반의 나이에 엄마 역할을 맡기 시작했어요. 지금이야 여배우들이 엄마 역할을 자연스레 맞지만 그때만 해도 그러지 않았죠. 그래서 제가 처음 엄마 역을 하겠다고 했을 때 다들 이해숙이 미쳤다고 했어요.
다들 연기를 안 하면 안 했지 무슨 엄마 역이냐 이런 분위기였죠. 하지만 제 생각은 달랐어요. 연기자로서 생명력을 길게 하기 위해선 다양한 엄마 역을 함으로써 중견 연기자로의 변신에 성공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죠.
그러면서 남편이 “그 대사는 이렇게 해봐”라며 시청자 입장에서 조언을 해줘요. 시어머니도 “아가, 그 드라마 참 좋더라.” 하시며 “일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밀어주세요.”라며 현재는 시어머니와 남편이 든든한 후원자처럼 느껴진다고 말해 훈훈함을 자아냈습니다.
20대 후반까지 주연 배우를 도맡아 하던 이해숙으로서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덕분에 현재까지도 연기 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네요.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다면 무슨 역할을 하든가 혹은 사회에서 어떤 일을 하든가 좋은 선택이 아닌가 하네요.
궁극적으로 본인의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까요. 이에 누리꾼들은 “하도 표독한 시어머니 역을 많이 하셔서 이런 과거가 있는 줄 몰랐다. 과거에도 지금도 미인이시네. 나이 들수록 우아한 배우” 등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최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