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트롯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가수 나상도의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나상도는 어제 아침마당에 출연해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충격적인 사실을 고백했는데요.
나상도는 과거 미스터트롯에서 빼어난 가창력과 특유의 눈웃음으로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이후로도 누구보다 밝고 즐거운 모습들을 보여줘 왔지만, 밝은 모습 뒤에 감춰진 진짜 인간 나상도의 삶은 그야말로 너무나 힘겨웠던 역경 그 자체였습니다.
그는 과거 부모님이 남들에게 폭행을 당한 데 이어 자신도 폭행을 당하는 끔찍한 시간을 보내야 했고, 이후 서울로 왔지만, 옥탑방에서 전기와 가스가 갑자기 나가버리는 참혹한 상황에 처하기도 했는데 도대체 나상도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1985년에 본명 김성철로 태어난 그는 시골 출신답게 9살 때부터 경운기를 몰았고, 이앙기와 트랙터 등 모든 농기계를 능숙하게 다루며 부모의 농사를 도운 아이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말은 좀 없는 편이지만, 부모 속 썩인 적 없고, 검소하면서도 잔정이 있는 애라고 밝혔는데요.
부모님은 후에 고깃집을 차리시게 되는데, 어느 날 손님끼리 싸움이 일어나자, 어머니께서 말리시다가 손님이 던진 잿더리에 얼굴을 맞아 피부가 크게 찢어지는 바람에 오랫동안 입원을 하는 설움을 겪게 되시기도 합니다. 나상도는 당시 자기가 너무 어려서 그 아저씨한테 뭐라고 못 한 게 아직도 후회가 된다고 하는데요.
그때 어머니께서 하실 수 있었던 건 오로지 집 앞에 소금을 뿌리며 다음부터 오지 말라고 하는 수밖에 없었는데 어머니가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고도 부끄러움도 많았고, 남들 앞에 서는 걸 두려워했던 나상도는, 학창 시절 남중을 나오고, 고등학교도 남자 반을 나오며, 학교 폭력까지 당했던 과거를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그는 학교에서 이유도 없이 맞았고, 매점에 빵 심부름을 다녀오기도 했다는데요. 하지만 그러고도 어른들에게 말할 수 없었다는데 그 이유를 밝히길 걔들은 장난일 수 있는데, 당하는 입장에서는 말을 하기가 겁난다 일이 커질까 봐 말을 못한 것도 있는데 걱정하실 엄마 생각이 가장 컸다 엄마가 그런 일로 학교에 찾아온다고 하면 만약 그 당시라면 너무 창피할 것 같다며 예민했던 사춘기 당시 피해를 당하고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안타까운 사연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그런 나상도는 노래에 재능이 있다는 걸 고1 때까지도 모르고 지내다가, 학교에서 수학여행을 갔을 때, 돌아가면서 한 곡씩 부르는데, 친구들의 잘한다는 칭찬에 그때부터 자신의 소지를 발견했다고 하는데요. 이후 나상도는 노래대회에도 나가 상품도 많이 타 오게 되면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와 한 대학의 실용음악과로 진학을 하게 됩니다.
그때만 해도 나상도의 아버지는 아들이 작곡이나 음악을 공부하는 줄만 알았지, 작은 섬에서 가수가 되겠다고 나서리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하셨다는데요. 후에 아들의 꿈을 알게 된 아버지는, 하지만 놀라지는 않으셨는데, 자신 역시 젊은 시절 기타 치며 노래하고 싶었지만, 부모의 반대로 포기를 해야만 했기 때문에, 그 꿈을 아들이 이어받았을 때 대신 기쁨이 더 크셨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안정하기 짝이 없는 가수의 길을 가겠다는 아들을 마냥 지지할 수는 없어서 반 억지로 경상대에 일반 학과에 등록시키게 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상도는 등록금을 반환하고 집에 돌아와 음악을 하겠노라 청하게 되는데요. 그때 아버지는 급기가 어디서 나왔겠냐 내 아들인데 그러니까 밀어줘야지 라며 덤덤하게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청운의 꿈을 안고 상경한 나상도 서울에 처음 간 남해 촌놈 나상도는 당시 호기심에 나이트라는 곳을 처음으로 찾아가게 되는데요. 남의 스타일로 청자켓에 똥색 골덴 바지를 입고 멋을 부린다고 부렸지만, 다른 이들은 다 입장이 되는데, 자신만 입구에서 입장 불가로 제지를 당하자 그는 그 뒤로는 아예 술집 자체를 가지 않게 되더라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나상도는 이후 대학에서 교수이자 대한민국 가요 코러스의 대무인 김연아 교수를 만나게 되는데요. 김연아는 후에 나상도가 이름을 알린 벌떡일어나의 노래를 작사, 작곡한 사람으로, 나훈아와 남진, 이선희, 이승철, 임영웅 등 내노라 하는 대한민국 최고 가수들의 노래에는 전부 그녀의 목소리가 코러스로 들어가 있는데 나상도는 그런 그녀의 권유로 장르를 트롯으로 정하고, 불타는 트롯맨에서 심사위원을 했던 윤명선 작곡가로부터 쌍쌍이라는 곡을 받아 첫 데뷔를 하게 됩니다.
또한 트롯가수에 걸맞게 이름도 나훈아의 나와 박상철의 상 설운도의 도를 따서 나상도라고 예명을 짓게 되는데요. 이렇게 이름까지 바꾸며 야심차게 활동을 시작한 나상도.
그러나 쌍쌍 노래는 과거 주현미가 대히트 쳤던 쌍쌍 파티와는 결과가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음반만 내면 대박이 나는 줄 알았지만, 나상도의 진짜 고생은 그때부터 시작되게 되는데요. 나상도의 아버지는 당시를 회상하며 내가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게 없었다 안타까웠다 때가 아닌가 보다 하고 기다린 게 20년이 흘렀다며 아들을 향한 애틋한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아들 나상도 역시 서울 생활 처음 할 때 너무 힘드니까 부모님께 밤에 울면서 전화한 적도 있다. 저는 울고 털어버리면 괜찮은데 부모님은 계속 걱정하시니까 어느 순간부터 그런 얘기를 아예 안 하는 버릇이 생겨버렸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는데요.
그는 옥탑방에 살면서 가스 끊기고 전기 다 끊겨봤다. 3층 옥탑방 살 때 2층이 주인 집이었다. 평소엔 당당하게 걸어가다가 월세가 밀리는 날이면 조용히 걸었다. 돈 받으러 오실 땐 아무도 없는 척 문 잠그고 숨어 있었다. 나갈 때도 밤에 나갔다라며 금의환향하겠다는 부품 꿈을 갖고 상경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가 없어 친척들의 눈을 피해 몇 년간 명절에 고향을 찾아가지도 못했다는 가슴 아픈 사연도 함께 밝혔습니다.
또한 아들이 빨리 tv에 나오길 손꼽아 기다렸다는 아버지는, 이웃들이 마을 회관에 모여 상도 언제 나오나 목이 빠져라 기다렸다. 상도는 가수가 되었지만, 무명 가수의 길은 험난했다. 설무대도 없었고, 먹고 살기도 힘들었다. 게다가 고향 사람들의 기대에 부담을 느껴 마음 편히 고향으로 오지도 못해 아버지로서 마음이 불편했다고 털어놨는데요.
나상도는 영탁과는 17년이나 알고 지낸 지기이고, 장민호와 임영웅과도 절친인데, 그들이 먼저 스타덤에 오르는 걸 보면서 마음이 급해지지 않았냐는 질문에 솔직하게 나랑 똑같았는데, 갑자기 잘 되는 그들을 보고 기쁜 마음이 있었다.
나는 어차피 누구 한 명 잘 될 거라면 내가 아는 사람이 잘 되는 게 낫다는 주의라며, 동료들의 성공에 질투를 하기보다는 함께 기뻐했음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고된 서울 생활과 계속된 생활고 속에서 나상도는 무려 10년이나 노래방 신곡 녹음 알바를 하며 겨우 버티게 되는데요.
노래방 기계에 신곡 연습하기라는 버튼을 누르면 반주만 나오는 게 아니라 사람이 노래를 부르는 목소리가 함께 나오는데, 과거 진성이 무명 시절 오랫동안 하던 그 알바를 나상도가 물려받았고, 노래방 100곡 중에 80곡은 나상도가 하는 등 남자 트로트 곡은 거의 다 자신이 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 알바는 노래 한 곡당 15만 원을 받는데, 알려진 곡을 부르는 게 아니라 신곡이 나오자마자 한 번 듣고 바로 익혀서 불러야 하다 보니 후의 나상도는 오디션 프로에 출전했을 때 어떤 노래로 경연해도 노래를 바로 습득하고 무대에 서는 데 많은 훈련이 되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같은 알바를 10년이나 하다 보니 나중에는 의욕도 떨어지고 결국 귀찮아지게 되는데 그때쯤 대신 영탁이란 친구를 써봐라는 지인의 말에 나상도는 자신의 밥 그릇을 빼앗길까 봐 다시 열의를 불태우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나상도는 20대 시절 어느 날 우연히 학창시절 자신을 괴롭힌 가해자와 마주치는 일을 경험하게 되는데요.
자신은 그 괴롭힘이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그 친구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너무 반갑게 인사하길래 그 녀석을 그냥 무시를 해버렸다고 합니다. 이후 나상도는 가수 활동이 힘들어 잠시 연예 기획사를 차리고 사업에 도전하게 되지만, 참담하게 실패하며 빚만 더 늘어나게 되는데요.
그렇게 20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무명 시절을 보낸 나상도 당시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데에는 스스로의 강한 의지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아버지의 변함없는 서포트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인데 아버지는 애가 오랫동안 고생을 했다 될 듯 안 될 듯 하던 시간 동안 참 마음이 아팠다며 아들이 긴 시간을 버텨낼 수 있었던 요인으로 남해인 특유의 저력을 꼽기도 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무래도 남의 사람들이 끈기가 있지 사실 애가 몇 번이나 그만두고 싶어 했다. 내심 아이가 안정적으로 살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하던 개 노랜데 계속 해야지 하면서 격려했다. 오늘만 보고 살 거냐 내일이 있는데 내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 하면서 그렇게 오늘까지 온 거다 아직 많은 길이 남아 있지만 잘 될 거라고 본다 실력이 있고, 그동안 버텨오던 내공이 있으니까라며 무심한 듯 아들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털어놓았는데요.
그렇게 나상도는 2017년에 발표한 벌떡일어나가 kbs 1박 2일에서 기상송으로 삽입되며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고 이후 sbs 트로신이 떴다에 참가하며 정말 노래대로 조금씩 벌떡 일어나게 됩니다. 당시 나상도는 무명의 설움을 딛고 결국 결승까지 진출하게 되는데 그러나 대국민 투표 점수를 합산한 최종 결과에서 아쉽게 2위로 순위가 밀리는 바람에 안타깝게도 그는 최종 2위로 경연을 마무리하게 되는데요.
심사위원 장윤정이 1위를 호명하던 그 순 남해 여기저기에서는 깊은 탄식이 터져 나왔지만. 그럼에도 나상도는 지금 이 시간에도 재고양 보물섬 남해에서는 국민들께서 저를 응원해 주고 계신다. 그동안 문자나 sns로 굉장한 응원을 받았다. 너무나 감사드린다며 고향 남해의 뜨거운 응원에 감사를 표했습니다.
남해 국민들은 그런 나상도에게 앞으로 승승장구하리라 믿는다. 상도가 남의 국민들께 감사하다 할 때 가슴이 울컥했다. 영원한 1등이라며 나상도를 치켜 세웠는데요. 하지만 그렇게 대단했던 나상도 열풍도 코로나를 피해가지는 못했는데 트로신이 떴다의 기세를 이어 신곡을 발표했지만, 트로신이 끝나니까 신곡을 부를 무대가 없다라며 코로나로 그는 다시 생활고에 빠지게 됩니다.
그렇게 힘들 때 나상도는 술을 마시고 처져 있기보다는 운동이라도 하고 생산적인 걸 해야 털어낼 수 있다고 말했는데요. 당시 그는 아침마당 도전 꿈의 무대에서 가족과 함께 무대를 꾸미는 5월 가정의 달 특집으로 아버지와 함께 참가를 하게 됩니다.
당시 아버지는 태풍 흰남로로 피해를 당해 4천 평 밭이 다 훼손이 되었다는 안타까운 사연을 밝히기도 했는데요. 나상도는 그날 아버지와 함께 뛰어난 실력을 선보인 끝에 기쁨의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고 몇 달 후 미스터 트로트에까지 참가해 최종 탑7에 놀라운 쾌거까지 이뤄내며 정상급 가수로 완벽히 자신의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그는 미스터 트롯에서 미소천사라는 별명을 얻게 되는데 사실 어릴 때부터 하베타를 닮아 학교에서 혼이 나도 왜 이렇게 웃냐는 소리를 들었을 정도로 항상 미소가 표정에 배어 있다는데요.
그간 힘든 일도 많았지만 가수가 되고 가장 기쁜 순간은 무대에 올랐을 때 많은 박수와 응원을 받을 때라고 하는데 그에게 무대에서 신나는 분위기를 이끌어내는 비결을 묻자 자신이 긴장하면 관객도 느끼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신나야 한다고 밝힌 그가 이제는 무대에 오르던 오르지 않던 언제나 항상 신나고 즐거운 삶을 살아가게 되기를 빌며 저희 채널은 가수 나상도의 앞날의 뜨거운 성원을 보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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