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독고영재의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독고영재는 사는 게 힘들어 운전 중 낭떠러지로 차를 굴려 극단적인 시도를 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고백했는데요.
그는 어제 방송된 tvN “회장님 내 사람들”에 출연해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는데, 사업에 실패해 이혼을 당하고 홀로 아이 둘을 데리고 지내다가 집까지 잃게 되어 떠돌이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고, 남산 식물원에 차를 주차하고 차 안에서 자고 했는데, 아침에 해가 뜨면 공용 화장실에서 딸을 세수시켜 차 안에서 우유와 빵을 먹인 뒤, 학교에 데려다 주는, 너무나 처참할 정도의 극심한 생활고를 겪었다고 합니다.
그런 생활이 너무 힘겨웠던 독고영재는 그러다 어느 날 결국, “떠나자. 이게 뭔가 이 나이에 이렇게 살려고 태어난 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결국 춘천을 가다가 팔 땅에서 차를 굴려버리는 극단적 시도를 감행하게 되는데요.
모든 것을 다 포기할 마음으로 일부러 사고를 냈던 그는, 당시 하늘이 도와 천만 다행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고,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사실을 후회하며 정말 자신이 나쁜 아빠라고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그는 만일 소원대로 자신이 죽었다면 아이들은 고아가 되었을 것이라고 울먹이며 말했는데요. 독고영재는 당시를 회상하며 술을 마신 뒤 차를 몰고 팔당댐으로 뛰어들었어요. 다행히 차가 나무에 걸려 살 수 있었는데, 아이들도 있는 부모로서 너무 감상적이고 무책임한 행동이었어요라며 나중에 후회를 많이 했다고 털어놨습니다.
독고영재는 하고 있던 사업이 망해 주머니에 단돈 32만 원이 남게 되었고, 아이들을 부모님께 맡기고 남산 식물원 부근에 차를 떼고 노숙 생활을 시작했던 것이었는데요. 그러다 하루는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딸이 자신과 떨어지기를 싫어해 함께 여관에 데리고 가서 잠을 자게 되었는데, 옆방에서 나는 남녀의 소리가 너무 잘 들린 바람에 신문지로 아이 귀를 막으면서 잠을 청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서서히 여관비도 떨어지자, 그는 결국 딸까지 차에서 재우는 노숙 생활을 시작하며, 화장실에서 세수와 양치질을 시키고, 우유와 빵 하나를 먹이고, 학교를 보내기 시작하는데요.
독고영재가 혼자 아이를 키울 수 밖에 없었던 건 사업에 실패해 이혼을 당했기 때문이었지만, 사실 그가 재산을 잃게 된 데에는 자신의 잘못이 아닌 타인으로 인해 당해야만 했던 너무나 억울한 사정이 숨어 있었습니다.
독고영재는 과거 서울 명동에서 한 광고 회사를 차리며 사업을 벌였고, 이듬해에는 가구 사업에 뛰어들어 주문형 가구를 제작했었는데요. 그러던 중 동업자가 독고영재를 속여 회삿돈을 계속 빼돌렸고, 당시 입점했던 백화점까지 부도가 나면서 사업을 접어야 했는데, 그 바람에 부인과는 헤어지며 두 아이를 홀로 키울 수 밖에 없었고, 수중의 돈이 하나도 없게 되면서 결국 아이들과 살집마저 잃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시련은 비단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는데요. 배우로 열심히 활동하던 독고영재는 과거 필리핀에서 영화 촬영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러던 도중 제작비가 모자란다는 이유로 더 이상 촬영이 어렵겠다는 소식이 들려오게 되었고, 결국 평소 친형제처럼 지내던 제작자를 믿고 3억 원을 대출받는데, 선뜻 보증을 서주게 되지만, 이후 영화 개봉과 동시에 제작자는 사라지고, 영화도 흥행에 실패했으며, 제작자가 임의로 자신 명의의 대출 보증을 추가로 늘려놓는 바람에, 대신 갚아야 할 돈이 4억 7천만 원까지 불어났다고 합니다.
독고영재는 당시 무엇보다 친동생처럼 생각해 온 사람에게 배신을 당해 너무 힘들었고, 주변에서는 자신이 그 친구를 믿고 아껴서 도와준 것이니까 우정의 대가를 치렀다 라고 생각하라고 했지만, 그냥 잊어버리기엔 그 대가가 너무나 컸다고 하는데요.
당시 그는 모든 출연료와 각종 행사 출연비를 모두 은행에 차압을 당했고, 노후에 대비해 마련해 둔 8만 제곱미터의 강원도 평창 땅도 7천만 원이라는 헐값에 팔아야만 했는데, 지금 그 땅의 시가가 50억 원선이라고 하니, 정말 땅을 치고 눈물을 흘려도 되돌릴 수가 없는 아픔을 겪었던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그가 극단적 시도를 했던 건 인생에서 한 번만 있었던 게 아니라고 하는데요. 그의 아버지는 잘 알려진 대로 유명 배우 독고성이지만, 아버지 덕에 부족함 없는 유년 시절을 보내던 중, 아버지가 제작한 영화가 줄줄이 실패하면서 가세는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고, 그러다 독고영재가 스무 살이 되던 해에 결국 집에는 차압 딱지까지 붙게 되는데요.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독고영재는 당시 빨리 자립해야겠다는 생각에 우유 배달, 구두 닦기 등 닥치는 대로 돈벌이에 나섰지만, 갑작스럽게 닥친 상황에 스무 살 밖에 되지 않은 갓 성인이 된 어린 청년에게 현실은 너무나 견뎌내기 힘들었던 고통이었고, 결국 그는 수면제를 다량 복용하며 극단적 시도를 하는 소동까지 일으키게 됩니다.
그는 당시 서울 왕십리서부터 명동까지 걸어가며 약국을 네 군데 들러 수면제를 120 발이나 사서 먹었다고 하는데요. 그렇게 쓰러진 독고영재는 가족들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져 목숨을 건질 수 있었고, 부모님과 친구들이 주위에 있는데 그렇게 창피한 적이 없었다며 본인의 행동을 후회했지만, 그 뒤로도 힘겨웠던 삶은 계속되었다고 합니다.
사실 독고영재는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배우의 꿈을 꾼 적이 없었고, 원래는 공부를 잘해서 정치외교학과에 들어가 기자가 될 생각으로 원서 준비까지 했었던 학생이었는데요.
심지어는 공부가 너무 쉬웠던 나머지 학교에 가면 선생님들이 다 아는 얘기만 하더라며, 수업이 시시하다고 느껴져서 오전 수업만 받고 마음대로 했던 적도 있었는데, 그렇게 하교 후 친구 자취방에 가서 놀다가 동네에서 쌈박질도 자꾸 하고 있다 보니, 어머니는 너 그렇게 사람 구실 못할 거면 나하고 이 세상을 뜨자 라고 말씀하시며, 그에게 알약을 4,050개 정도를 주시며 화를 내신 적도 있으셨다고 합니다.
당시 사춘기였던 독고영재는 그런 어머니께 어린 반항심에 그래요 라고 말했고, 어머니가 먼저 약을 드신 후 누우시더라며, 그래서 자신도 약을 먹고 아무렇지 않게 자리에 누웠다고 하는데요. 그런데 잠시 후 이상에서 일어나 살펴보니 어머니는 방에 연탄까지 피워두셨고, 이후 작은 아버지가 창문을 깨서 어머니와 그를 구한 뒤로 독고 형제는 정신을 차리고 모범생으로 거듭났다고 합니다.
이후 그는 아버지로부터 드라마 연출자를 소개받고, 서울 연극학교 시험에 응시해 합격하게 되면서, 원래 가지고 있던 기자의 꿈 대신 연기자의 길을 선택하게 되는데요.
배우가 된 독고영재는 신사답고 멋있는 이미지로 다양한 작품에서 활동했지만, 그렇게 화려한 모습이기에 사실은 젊은 시절 수십 년이나 무명의 설움을 겪으며 너무나 처참하고 힘겨운 삶을 살았는데 스무 살의 영화 배우로 첫 데뷔를 했지만, 중년이 되어서야 이름을 알렸던 것이지 그 전까지는 내내 너무나 긴 무명 시절을 겪었고, 그로 인해 열등감도 상당히 많았다고 합니다.
그는 대학 재학 시절에 연극으로 무대에 처음으로 섰고, 이후 영화 핏방울로 스크린에 데뷔한 뒤, 그 영화로 청룡영화제 신인 나무상을 받으며 단번에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는데요. 하지만 이후 연극 무대에 집중했던 탓에 돈벌이는 시원치 않았고, 영화에도 간간이 출연했지만, 조연이나 단역이었다 보니 주목을 받지 못해 무명인 상태로 심지어 한때는 생계를 위해 에로 영화나 b급 영화에까지도 구욕적으로 출연을 했었다고 합니다.
결국 그는 그러다 고육지책으로 사업에 뛰어들었고, 첫 사업으로 석유난로와 정수기 등을 수입해서 파는 무역업을 했었다고 하는데요. 연기를 하자니 돈이 안 되고, 돈을 벌자니 좋아하는 연기를 못해 혼돈기를 보냈던 그는, 당시 집에서 tv를 보다가 전영록, 이덕화 등 연예인 2세 친구들이 나오면 아버지가 조용히 채널을 돌리셨다고 합니다.
당시 독고영재는 자신과 친한 사람들이 나오는데 왜 채널을 돌리시냐고 물었지만, 아버지가 아들이 느끼는 열등감을 알고 아들을 배려해서 그렇게 하셨다는 걸 나중에서야 깨닫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결국 이후 결혼을 하고도 배우로 풀리지 못해 이런저런 사업을 하던 독고영재는, 아까 이야기한 대로 동업자로부터 배신을 당해 전 재산을 잃어 이혼까지 당하며 아이를 차에서 재워야 했지만, 훗날 딸은 아빠와 차 안에서 잤던 게 제일 행복했어라고 말해 아빠를 깜짝 놀라게 했다고 합니다.
딸의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던 독고영재는 그 길로 술까지 끊고, 결국 자신이 갈 길은 연기라는 결론을 내려, 연기 바닥에서 살아남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했고, 최민수로부터 1대 1로 연기를 지도받는 등 수많은 날들을 노력한 끝에 끝끝내 이름을 알리는 데 성공하며 스타 배우의 반열에 오르게 되는데요.
또한 그는 중년이 되어서야 만나게 된 지금의 아내에게 최고의 남편이 되어 주고자 최선을 다했는데 독고영재는 한 영화에 출연하던 당시 의상팀에서 일하고 있던 지금의 아내 이은주 씨를 만나게 되었지만,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독고영재는 형편이 어려워 재혼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었고, 이은주 씨도 독고영재가 전처와 이혼해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우연히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의 처지를 알게 된 이은주 씨는 여성인 그녀가 먼저 만나고 싶다는 뜻을 전하면서 교제를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교제 당시 독고영재는 4개월 넘게 전기 요금을 내지 못해 초를 켜놓고 생활을 하던 지경이었는데, 어느 날 집으로 놀러 온 아내가 왜 초를 켜놓고 있는지 물어보자, 독고영재는 오늘부터 촛불 잔치를 한다 라고 둘러댔고, 이에 아내는 사실 눈치를 챘지만, 오히려 초를 20개 정도 벗어와 밤마다 켜 놓으며 도코 형제의 길을 살려주었다고 합니다.
또한 당시 아내는 독고영재에게 주려고 100만 원을 들고 왔었지만, 자존심 상해할까 봐 주지 않고 그냥 돌아가기도 했다는데요. 결국 독고영재는 자신의 자존심까지 걱정해줄 여자라면 결혼해도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재혼을 결심하게 되지만, 두 사람이 사랑을 이어가기에 도코 형제는 이혼남의 아이도 둘이나 있었고, 심지어 두 사람은 16살이나 나이 차이가 나기도 하는 등 현실적으로 문제가 많았던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교제 사실을 알게 된 이은주 씨의 부모님마저 역시 예상대로 강하게 반대를 하셨지만, 결국 이은주 씨가 부모님을 설득하면서 두 사람은 결혼에까지 꼬리 날 수 있었는데요.
결혼 이후 독고영재는 부부동반 프로그램이나 광고 등 방송계 제의를 많이 받았지만, 이 제의들을 모두 반려했는데 아내가 자신의 인생을 오롯이 살기를 원했기에, 아내의 얼굴이 알려져 버리면 평범한 인생을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한 독고영재는, 광고 출연 수입을 과감히 포기하고, 아내를 위해 쏟아지는 제안들을 모두 거절하는 멋진 남편의 모습을 보여주게 됩니다.
이렇게 그는 아내와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현재는 다양한 작품에 등장하며 명연기로 시청자들과 만나고 있는데요. 젊은 시절, 궁핍한 형편에 두 번이나 죽으려고도 했었고, 한때는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잃기도 했었지만 결국 인고의 시간을 보낸 끝에 성공을 이뤄냈으니 우리의 인생도 기다리고 인내하면 언젠간 좋은 날이 온다는 교훈을 그의 인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모쪼록 그가 앞으로도 가족들과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기를 바라고, 앞으로의 날들에 즐거운 일들만 펼쳐지기를 바라며 배우 독고영재에게 여러분의 따뜻한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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