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김인태 떠나보내고 모든 것 떠안은 백수련… 결국…

현빈과 손예진, 오연수와 손지창, 원빈과 이나영, 이보영과 지성, 김승우와 김남주 등등 연예계에는 많은 배우 부부들이 존재합니다. 주로 배우 부부들은 함께 일하다가 사랑의 싹이 크며 결혼까지 이릅니다. 직업적인 특성을 서로 잘 이해해 주기에 평생을 서로에게 힘이 되어 가며 잘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의 주인공 백수련과 김인태 역시 배우 부부입니다. 두 사람의 큰아들 김수현 역시 브라운관과 스크린 연극 무대에서 맹활약하고 있습니다. 세 사람 다 얼굴이 알려진 배우들로 행복하고 풍족한 환경에서 지내지 않을까 싶지만, 이 가족에게는 눈물 없이 듣지 못할 슬픈 사연이 있다고 합니다. 백수련은 사기와 보증 때문에 100억이 넘는 빚에 시달리고 구치소까지 다녀왔습니다.

또 그녀의 남편은 그 상황 때문에 결국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들은 신용불량자가 되어 비혼 선언까지 했습니다. 각자가 저마다의 슬픈 사연이 있는 이 가족은 과연 어떤 시간을 보냈을까요? 오늘은 백수련과 그 가족들의 삶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긴 글이니 시간 나실때 천천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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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저씨’의 개미굴 할머니

2010년 개봉한 영화 아저씨는 617만 명의 관객으로 흥행에 크게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영화의 인기와 더불어 많은 배우도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김희원이 극 중에서 내뱉은 “이거 방탄유리야”라는 말은 유행어가 되어 아직도 회자하고 있으며 주인공 원빈이 스스로 머리를 미는 장면도 지금까지 명장면으로 거론됩니다.

그리고 아역배우였던 김새론은 이 영화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최고의 스타가 되었습니다. 2009년 이창동의 여행자 주연으로 연기력을 뽐내기 시작하더니 2010년 아저씨로 가장 주목받는 아역배우이자 충무로의 기대주로 급부상했습니다. 김새론에게 있어서 아저씨는 그녀의 이름을 알리게 해준 대표작이자 대표작입니다. 그녀가 혼날 술 마시고 사고를 저질렀을 때도 “아저씨가 이러라고 구해준 거 아닐 텐데….”라는 댓글이 달릴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아저씨가 나온 또 하나의 스타가 있습니다.

바로 개미굴 할머니 역할을 맡아 열연을 펼친 배우 백수련입니다. 백수련이 맡은 개미굴 할머니는 아이들을 거래하는 범죄 조직에 속한 인물로, 아이들을 잡아 가두지만 아무런 죄책감을 못 느끼는 캐릭터입니다. 작품에 나온 부분이 길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짧은 등장에도 관객에게 강한 여운을 남겼습니다. 대사가 많지 않음에도 표정만으로 섬뜩함을 잘 표현해내 관객들의 등골을 서늘하게 했습니다.

성우에서 배우로 자리매김

백수련은 1958년 연극배우로 처음 데뷔해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기쁜 우리 젊은 날’, ‘오! 할매’ 등 많은 드라마에 출연했습니다. 영화 역시 ‘아저씨’, ‘김봉남 살인 사건의 전말’ 등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습니다. 많은 작품을 하며 60년 넘게 배우 생활을 하고 있지만 사실 그녀의 꿈이 처음부터 배우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녀가 배우의 꿈을 꾸게 된 것은 고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고등학교 때 오페라 공연을 본 그녀는 가슴이 웅장해지는 것을 느끼며 배우의 꿈을 품었습니다. 그후 학교 연극부에 들어가고 국립극단에 입단하며 배우로서의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늘 배고팠던 배우의 삶에 성우 시험을 보고 mbc 성우 1기로 입사해 생계를 이어나갔습니다. 당시 성우 동기로는 나문희, 김영옥, 최선자 등이 있습니다. 세 사람 모두 성우로도 활동했지만 배우로도 왕성한 활동을 하며 이름을 날린 배우들입니다.

그렇게 성우로 활동하던 백수련은 점점 더 활동 영역을 넓혀 다양한 작품에서 연기할 기회를 잡았습니다. 매 작품 개성 있는 연기를 펼치며 대체 불가한 배우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결혼

그리고 배우 생활하다 같은 배우인 김인태를 만나 부부의 연을 맺었습니다. 김인태는 인자한 인상을 가진 배우로 자상한 아버지 역할을 주로 맡아 시청자들에게 친근한 매력을 뽐냈습니다. 두 사람은 연애 시절부터 동기들 사이에 유명한 커플이었습니다.

두 사람과 절친했던 배우 최선자는 “김인태는 성품이 넉넉하고 어떤 작품을 맡아도 사심이나 욕심이 없이 묵묵히 수용하던 배우.”라며 회고했습니다. 김인태는 드라마 토지, 왕꽃선녀님, 명성왕후, 발리에서 생긴 일 등이 출연하며 이름을 알렸습니다.

시련의 시작 100억의 빚

그리고 동료 배우들의 응원에 1982년부터 86년까지 탤런트 협회장을 맡았습니다. 명예로운 직책이지만, 그때의 활동으로 가세는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김인태는 동료 배우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습니다. 그의 노력으로 당시 배우들의 출연료가 많이 올라간 것은 사실이나, 가정에는 좋지 못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방송국 관계자들은 김인태의 행보가 못 마땅했고, 김인태는 물론이고 아내 백수련의 출연까지 막았습니다.

그 때문에 두 사람의 가정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백수련은 이를 이겨내기 위해 사업을 했지만, 오히려 빚만 늘었습니다. 그녀는 부족한 사업 수완으로 적자를 기록했고 사업을 하면서 당한 거액의 사기 때문에 경제난을 겪었습니다.

게다가 사업이 몰락하며 구치소 생활까지 했습니다. 백수련은 구치소에서 나오고도 한동안 후유증에 괴로워하며 억겁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뿐 아니라 보증까지 잘못 서서 거액의 빚까지 떠안았습니다. 여러 차례 돈을 잃었기에 그 금액이 100억 가까이 되었고 2007년에야 빚을 청산했다고 밝혔습니다.

신용불량자가 된 아들

거기다 보증을 잘못 선 일 때문에 사랑하는 큰아들에게까지 영향이 미쳐 신용불량자가 되었던 사연도 소개했습니다. 그의 아들은 배우 김수현으로 영화 부당거래, 거인, 호흡, 결백 등에 출연하며 이름을 알렸습니다. 연극 무대에도 자주 오르는 배우로서, 최근에는 국립극장에서 공연하는 햄릿에서 호레이쇼를 맡아 열연을 펼쳤습니다.

그는 어머니의 잘못된 보증으로 인해 아파트와 재산을 날리고 신용불량자가 된 적이 있습니다. “앞으로 자신이 결혼하게 된다면 가족들이 함께 고통받을 것 같다.”라며 비혼을 선언한 바 있습니다. 백수련은 자기 잘못이 자식에게까지 대물림되었다는 것을 밝히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아이를 버려놓은 것이 우리 대가 끊겼어요.

아들이 자기가 결혼하면 아내 되는 사람에게 피해가 가니까, 결혼 안 한다고 해요. 피눈물 나죠.” 하며 비통한 심정을 전했습니다. 아들 김수현은 아버지와 똑 닮아 어떤 일이든, 힘든 내색 한번 없었다고 합니다. 엄마 때문에 청춘을 빚 갚는데 다 썼으면서, 하소연 한 번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결국

그리고 백수련이 일으킨 경제적 어려움은 남편 김인태에게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남편은 아내의 실수로 100억 가까운 빚을 안게 되었을 때도 단 한 번 나무함 없이 곁을 묵묵히 지켰습니다. 땅과 집이 모두 날아갔을 때도 아내 탓을 하지 않았습니다. 훗날 두 사람과 절친한 배우 이경표는 그런 김인태의 행동에 감탄하며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는 김인태 회장님이 대단하신 것이 백수련 선생님께서 그렇게 큰 액수의 보증을 잘못 서서 빚을 떠맡게 됐는데도 그것에 대해 다른 사람들은 당장 이혼 얘기부터 나오잖아요. 그분은 그런 말을 한마디도 안 하셨어요. 그보다 작은 빚에도 이혼 얘기를 꺼내는 배우자가 많은데 김인태는 단 한 번도 아내를 난처하게 한 적이 없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내에게 표현하지 않았을 뿐이지, 사실은 김인태도 속은 많이 곪아 있었습니다. 결국 그는 전립선암을 시작으로 스트레스성 파킨슨병을 얻었고 각종 합병증으로 병세가 악화하여 2018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김인태는 투병생활을 11년동안 하다, 결국 세상을 떠났습니다.

긴 병에는 효자 없다라고 백수련 역시 남편의 간호를 하며 힘든 순간이 있었다고 합니다. 특히나 잠을 못 자니까 매우 힘들었다고 합니다. 백수련이 피곤한 몸 상태로 짜증을 내자, 김인태는 해맑은 눈으로 아내에게 “잘못했어요”라며 사과했습니다. 백수련은 자기 행동을 뉘우쳤습니다. “눈을 감을 때까지 남편의 그 말과 행동 표정까지 못 잊을 것 같다.”라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백수련은 오랜 시간 동안 매우 힘들어했습니다.

파란만장한 그녀의 인생 굴곡을 다 감싸 안아준 남편이 세상을 떠났을 때는 얼마나 슬펐을까요? 아직도 그녀는 남편의 이름 석 자를 들을 때마다 눈시울을 붉힌다고 합니다. 단순히 사랑했던 사이가 아니라, 깊은 존경심을 갖고 있던 남편이었기에 그 빈자리를 아직도 크게 느낀다고 합니다.

아직도 그녀의 집에는 세상을 떠난 남편의 추억이 가득하다고 합니다. “과거 힘든 날들을 모두 지우고 싶다.”라는 백수련,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온 그녀의 모습에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이제는 그 어떤 시련 없이 평탄한 길만 걸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행복한 일만 가득하기를 바라며 백수련의 앞날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