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40년에 걸쳐 꾸준히 활동한 중견 배우임에도 젊은 세대에게까지 변함없이 사랑 받는 것은 모든 배우의 꿈일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배우 김영철은 그 꿈을 벌써 이뤘다고 볼 수 있겠네요. 김영철의 명대사인 ‘사딸라’, ‘누가 기침소리를 내었는가?’ 등이 젊은 세대에서 큰 인기를 끌어 2019년에만 8편의 광고를 찍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김영철은 사생활 면에서는 큰 위기를 맞이했었습니다.
화려한 연기 경력만큼 그의 인생도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김영철은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요?
이제 아래에서 김영철의 파란만장한 인생에 대해 말해보고자 합니다. 긴 글이니 시간 나실때 천천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두 연기자의 엇갈린 운명
“누가 기침 소리를 내었는가!”라는 장면으로 유명한 궁예는 배우 김영철이 굉장한 연기로 소화해내 여전히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궁예 역할에 김영철보다 먼저 고려되었던 배우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는가요? 바로 배우 이덕화입니다. 하지만 결국 캐스팅이 반려되었습니다.
이유는 이덕화가 궁에를 맡을 경우에는 궁예의 모습에서 요승 이미지가 너무 강해진다는 이유로, 제작진 측에서 고심 끝에 반려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궁예에는 후순위였던 김영철이 캐스팅되었으며, 김영철의 궁예는 훗날에도 전설로 남으며 그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후 두 사람의 운명이 또 한 번 바뀐다는 것입니다. 이후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 전두환 역으로 김영철이 1순위로 지명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김영철은 당시 영화 ‘달콤한 인생’ 촬영 스케줄과 겹쳐서 결국 고사하게 되었고, 캐스팅 후순위였던 이덕화에게 전두환 대역이 돌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다른 의미로 큰 문제점이 생기게 됩니다. 이덕화가 악역인 전두환 역을 너무 훌륭하게 잘 소화해 버린 덕분에 ‘전사모’라는 전두환을 사모하는 모임이라는 카페가 생겨버리게 된 것입니다.
사실 제작진이 이를 우려하여, 전두환이 노태우 및 참모들과 대화하는 장면에서는 음산하고 무거운 배경음까지 깔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덕화는 매력적인 인물로 돋보일 정도로 연기를 너무 잘한 것이었습니다. 두 배우의 운명은 이렇게 엇갈리게 되는데 각자 자기가 맡은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냅니다.
연기 활동
김영철은 1973년 민예극단에 입단해 연극배우 생활을 하던 중, 1977년 동양방송 공채 18기 탤런트로 브라운관에 데뷔하여 조연으로 주요 드라마에 출연합니다. 그러다 언론 통폐합 이후 1980년대 KBS 드라마에서 두각을 나타내었습니다.
1993년에 히트한 sbs 드라마 댁의 남편은 어떠십니까에서 남편 강세풍 역할을 맡았으며, 극 중 김영철과 이미숙이 싸우는 장면이 백미로 꼽힙니다. 김영철이 늦게 들어와서 이미숙에게 입술을 삐죽 내밀며 “뭐해! 밥차려 와!”라고 소리치면, 이미숙이 노려보며 “어휴 저놈의 밥통대왕!”이라고 맞받아치며 화를 내는 장면이 대표적인 장면으로 꼽힙니다.
당시 한국의 부부관계 문제를 공감하도록 하면서 코믹함도 동시에 잘 보여준 부부연기라는 평가받았습니다. “밥통대왕”이라는 대사가 한때 주부 시청자들 사이에서 큰 공감을 일으키며 유행어가 될 정도였으니 인기가 엄청났던 부부 드라마계의 히트작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드라마 성공, 궁예
그러다 2000년대에 들어서서 김영철은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바로 ‘태조 왕건’의 궁예 역과 ‘야인시대’의 ‘중년 김두한’ 역을 맡은 것입니다. 두 캐릭터는 당시 해당 드라마들이 방영되던 때에 태어나지 않았던 세대들조차도 그 유행어를 알 정도로 오랫동안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궁예는 애초의 주인공도 아니었고 총 200부작 드라마 중 80%까지만 나오는 것으로 계약된 배역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상을 초월하여 궁예의 역할이 시청자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게 되는 바람에, 두 번 연장되어 120부까지 출연하게 됩니다. 드라마의 절반 넘게 궁예가 주인공 왕건보다 더 주인공 같다는 평가를 받으며 주목받았고, 결국 김영철의 주인공이 아님에도 그해 연기 대상까지 차지하게 됩니다.
대상 수상자가 주인공 역할이 아니라는 사실이 당시 관례에서 보면 꽤나 파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김영철의 궁예 연기가 2000년 내내 이슈였을 정도로 너무나 뛰어났기에 주인공이 아닌 배역의 대상 수상에도 논란이 전혀 없었습니다.
드라마 성공, 김두한
이후 2002년 야인시대 2부의 주인공을 맡은 그는 김두한의 청년기를 다루는 1부의 안재모에 이어, 해방 후 정치 강패와 정치인으로 변모해가다 몰락을 맞는 2부에 출연해 명연기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며 안재모에게 연기 대상까지 안겨준 1부의 히트와 화제성에 비해 2부는 비교적 인기가 많이 하락한 편이었습니다.
그러나 10여 년의 세월이 지난 이후 “사딸라” 등이 인터넷 상에서 폭발적으로 유행하게 되었고, 김영철에게 시기와 세대를 초월한 인기를 선사하는 배역이 되었습니다.
깨달음을 준 대선배 이순재
한 방송에 나와 자신의 연기 인생에 관해 이야기하길 “2010년대 이전까지는 드라마 제작진들 사이에서 자신의 악명이 대단했다.”라고 밝혔습니다. 연출 과정에서 PD의 디렉팅에 맞서는 건 물론, 대기 시간이 길어지면 촬영을 거부하고 귀가해 버리는 경우도 흔했다고 합니다.
덕분에 피디나 드라마 제작진은 이런 김영철을 달래기 위해 대부분의 촬영 현장에서 1순위로 촬영을 해줬습니다. 그런 이유로 드라마 업계에서 대단한 악평을 듣는 처지가 됐는데, 큰 깨달음을 얻고 자기 행동을 고치게 된 계기가 바로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 출연하면서라고 그는 전했습니다.
배우 최고참인 이순재가 무려 5시간 동안 기다리고 있으면서도, 아무 불만 없이 묵묵히 자기 순서를 기다리는 것을 보고 무척이나 큰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합니다. 대선배도 다른 배우들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데, 지금껏 자신의 편의만 우선시 해왔던 행동에 그는 큰 반성을 했습니다. 이후 이순재는 새벽녘에야 촬영을 시작해 동틀 무렵의 촬영을 끝내고 귀가했고 이후로는 김영철, 자신도 이순재처럼 후배나 동료들을 배려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혼 소송
한편 그의 부인 역시 연기자로 1978년 미스롯데 선발대회 선으로 데뷔했던 이문희입니다. 두 사람은 3년간의 열애 끝에 1981년 결혼에 골인했지만, 어느 날 갑자기 두 사람 사이에 파경설이 돌았고 실제 두 사람은 2009년 이혼 소송을 겪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국 법원의 조정신청을 받아들여 재결합했습니다.
김영철은 소송에 대한 고백을 한 이후 아내에게 보내는 영상 편지로 “내 인생의 기준은 너다. 내가 잘못했고 내가 해준 거에 비해 너무 많이 받았다. 용서를 해준다면 최선을 다해 나와 너에게 부끄럽지 않은 인생을 살겠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결국 이혼설까지 나오게 되는데, 이혼설에 대해 김영철은 “부인과 함께 아침 식사 도중 파경설을 전해 들었다. 충격을 금치 못했다.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은 추측성 기사가 안타까울 뿐이다.”라며 충격적인 심경을 전했었습니다.
김영철은 이어 “제주도 현지 올로케이션으로 진행되는 SBS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 촬영으로 인해 집을 비우는 일이 잦아져서 생긴 오해인 듯하다. 파경이나 불화는 말도 안 되는 일이다.”라고 일축했습니다. 김영철의 이혼 소송설은 사실이지만 일부 언론에서는 당시 김영철이 아내와 소송을 한 이후 변호사가 이문희를 상대로 성공보수를 지급하라며 소를 제기했다는 보도가 나와 논란이 되기도 했었습니다.
이문희는 2010년 김영철에 대해 위자료 및 재산분할 소송을 제기했었고, 김영철은 이에 와전된 것이라고 부인한 바 있습니다. 두 사람은 김영철이 고백한 대로 두 차례 공판을 거친 끝에, 법원의 조정 신청을 받아들여 재결합했습니다. 하지만 이문희의 법정 대리인이었던 변호사 A씨가 이문희를 상대로 성공 보수를 명목으로 소를 제기한 것인데, 이와 관련해 김영철은 “당시 소송을 맡았던 변호사에게 2,700만 원 정도의 보수를 지급했는데, 갑자기 1억 원의 성공 보수를 요구하고 나섰다.”라고 밝혔습니다.
김영철은 이어 “파경 소송을 위해 고용한 변호사였기 때문에 성공 보수라 하면 파경이 성립됐을 경우 지불해야 맞는 것이 아니냐? 파경 맞지 않고 현재 부부인데 성공 보수를 달라니 말이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매번 작품에서 명연기를 펼치는 김영철의 앞으로의 활동들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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