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미 큰아들 중대발표… 최초 목격자 팬클럽 회장은 그녀의 남자친구… 공통된 의문점…

현미의 장자인 이영곤씨가 어머니의 유해를 미국으로 가져갈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단순히 아들들이 미국에서 거주하기 때문이 아니라, 어머니의 사망과 관련한 충격적인 속사정이 숨겨져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영곤씨는 장례식장에서 인터뷰를 받았을 때, 국내에서 장례 절차를 마친 뒤에는 미국으로 어머니의 유해를 모시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유로는 이제라도 모시고 가서 자주 뵙기 위함이라고 밝혔으며, 이미 동생 등 가족들이 미국에 거주해 있어서 자주 찾아볼 수 없다는 이유도 언급되었습니다.

고인의 묘소를 아들들이 관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국내에는 고인과 가까운 친척들인 노사연씨와 배우 한상진씨를 비롯해, 남자친구와 가수 협회 동료들 등 묘소를 관리해 줄 사람들이 충분히 있습니다. 게다가 납골당으로 유해를 모실 수도 있기 때문에 아들들이 묘소를 관리하는 것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하면 묘소 관리라는 일 자체가 없어지게 되며, 국내 현미 지인들도 수시로 편하게 현미를 보러 올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조상님들께 성묘나 벌초를 가는 것도 1년에 명절마다 한두 번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아들들이 국내에 올 때마다 어머니를 뵈러 가는 것이 충분합니다.

낯선 미국 땅으로 어머니를 모셔가는 것은 아쉬움을 표하고 있는 많은 지인들에게는 큰 상처일 수 있습니다. 결국 현미는 안타깝게도 죽어서도 아들들과 자주 만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를 그리워하는 많은 지인들과는 앞으로 만나기가 힘들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봉조의 후손들에게 실례가 될 수도 있지만, 이봉조는 생전에 자식들에게 자신의 본처와 함께 묻히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전달했기 때문에 자식들이 어머니를 이봉조 곁에 함께 안장한 것은 이봉조의 의지를 존중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봉조의 생전 의지에 따라 현미를 다시 함께 묻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면, 이봉조의 옆자리까지는 아니더라도 가까운 곳에 현미를 모셔드리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습니다.

더욱이 이봉조는 현재 천안에 위치한 공동묘지에 안장되어 있기 때문에 해당 공동묘지에 남은 묘지가 있는지 확인해보는 것도 가능하고, 다른 묘지를 찾아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일 수 있습니다. 이봉조와 현미를 그리워하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최선의 결정을 내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영곤씨는 인터뷰에서 혼자서 어머님을 모셔가시게 된 것에 대해 매우 아프다는 말씀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식들이 둘 있고, 많은 식구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혼자 말 없이 가시게 된 것이 평생 못 씻을 불효로 남을 것이라고 느꼈다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러나 일상적으로 어머님과 카톡이나 영상 통화를 매일하였고, 떠나기 전날에도 영상 통화를 하였습니다.

어머님께서는 평소처럼 이모티콘과 함께 좋은 이야기를 전하셨고, 어머님 댁에서 잠을 자고 나니 어머님께 다니러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합니다. 국내에서 장례 절차를 마친 뒤에는 미국으로 어머니의 유해를 모셔가기로 결정하였는데, 이는 자주 찾아뵐 수 없는 상황에서도 어머님과 자주 뵙고자 하는 참회의 마음으로 한 결정이었다고 말씀하였습니다. 이번 일로 인해 평생 못 씻을 불효가 될 것이라는 아픔과 참회하는 마음이 어머님을 모셔갈 결정을 내리게 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국내에서는 현미의 남자친구였던 김우일씨가 현미의 마지막 순간에 함께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져 일부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건강했던 현미가 갑작스럽게 별세한 것이 이상하다는 의견들도 있어서 김우일씨의 행적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김우일씨는 남자친구이자 매니저를 자처했는데, 현미의 별세 직후에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모두 거절하고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현미의 별세 이틀 후에야 자신이 현미의 별세를 목격한 팬클럽 회장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일부 네티즌들은 김우일씨의 이야기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김우일씨는 현미의 심부름으로 세탁소를 다녀온 뒤 5분 사이에 돌아와 현미가 쓰러져 있었다고 밝혔지만, 요즘 세탁소는 대부분 배달을 해주기 때문에 왜 김우일씨가 직접 나가서 세탁소에 갔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이영곤씨가 다른 사람들을 믿기보다는 자신과 동생이 직접 가까운 거리에서 어머니를 모시는 것이 가장 안심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녁에 현미의 집에서 기분이 세지 않아 그냥 거실에서 자기로 한 것인데, 그것이 현미가 다음 날 죽을 것을 예견한 것처럼 들린다는 이야기입니다. 게다가 현미의 남자친구로서, 그들은 성인 남녀로서 같이 자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팬클럽 회장이라며 현미와 따로 거실에서 잤다고 말하는 것은 신뢰하기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마치 현미의 매니저처럼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고 현미의 집에서 거의 함께 자지 않은 사람처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현미의 갑작스러운 사망에 대해 일본 네티즌들은 타살설까지 제기하고 있지만, 이는 다소 과한 추측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왜 그가 현미와 함께 잤다고 말하지 않는지에 대한 해명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또한 김우일은 현미가 과거 다쳤을 때 119를 부르는 법을 몰라서 자신이 대신 불러줬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스마트폰으로 아이들과 영상 통화를 매일 하는 현미가 119를 부르는 법을 몰랐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초등학생들도 알고 있는 119 신고 방법을 수십 년 동안 사회생활을 해온 현미가 어떻게 몰랐다고 말하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김우일이 현미를 보필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인터넷상에서 옛 배우 그룹 동료로 추정되는 사람이 게시한 게시글에 따르면 김우일은 대우그룹 해산 직전에 상무로 진급해 잠시 몇 달간 임원 생활을 경험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는 김우중 회장과 고급 정보를 나누고 비밀스러운 지시를 받을 정도의 위치는 전혀 아니었다고 하며, 이는 당시 대우의 경영진과 임원들이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사실입니다.

김우일은 33세에 대우에 입사해 평사원으로 지내다가 49세에 가장 낮은 단계의 임원인 상무로 올라 1년도 채 되지 않은 기간 동안 임원 생활을 했습니다. 그 후 대우그룹이 해체되었기 때문에, 김우중 회장을 정말로 모셨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최소 당시 50대 이상의 대우전자나 대우자동차 등 대우 계열사의 사장 또는 부사장급 정도의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김우일은 대우그룹이 사라진 후 자신이 대우의 핵심 인력이었던 것처럼 행세하며, 마지막 구조조정 본부장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이를 빌미로 신문 매체 등 여러 언론에 대호와 관련된 비화를 팔며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대우그룹의 마지막 구조조정 본부장은 김우일이 아니라 대우자동차의 사장이었던 정주호 사장이었습니다. 이 사실은 당시 뉴스 보도 화면 속 자막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우일이 대우에서 일한 기간은 1983년부터 1999년까지 약 16년 정도이므로, 그가 30년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과장이거나 거짓이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30년이 사실이라면, 그는 1999년에 대우그룹을 퇴사한 후 2013년까지 13년간 김우중을 더 모셨다는 이야기가 되겠지만, 인터넷상 게시글에서 평가한 바에 따르면 김우일은 퇴사 후에도 대우와 김우중 파이를 다루며 대우 가족을 두 번 죽이는 행위를 자행했다고 합니다.

그의 평판이 그만큼 나빴기 때문에 김우중 회장의 영결식장에도 참석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게시글에서는 김우중 회장이 돌아가셨으니 이제 그만 입을 다물고 조용히 지내길 바란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즉, 김우일이 30년 동안 김우중을 모셨다는 이야기는 그가 마음속으로는 모셨다고 생각할 수는 있겠지만, 실제로 그렇게까지 했다고 보기에는 다소 어려운 면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김우일이라는 사람의 인성과는 별개로 그가 현미를 진심으로 돌봤다고는 하니, 김우일이 현미에게 접근한 목적에 대해서는 정말 현미를 좋아하는 팬의 입장으로 그랬을 수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김우일이 계산적으로 현미에게 접근했다고 의심하기에는 확실한 근거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미의 아들 이영곤 씨의 입장에서는, 생전 아들들을 대신해 현미를 돌봐준 김우일에 대해 고마운 마음이 있겠지만, 그 사람을 믿고 국내에 현미의 유해를 모시기에는 아마도 믿을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아들들만이 어머니를 안심하고 모실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현미가 평생 동안 겪었던 여러 어려움들을 생각하면, 이제는 그 모든 아픔을 털고 편안한 마음으로 하늘에서 쉴 수 있기를 바라며, 고인이 된 가수 현미의 명복을 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