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출부부터 주병진과 ○○스캔들까지 가수 김수희 전해진 충격 근황…

1990년대에 들어서자 가요계의 분위기는 급변하게 되었습니다. 신승훈, 김건모, 서태지와 아이들 같은 새로운 가수들이 나와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음악을 보여주며 가요계를 주름 잡았던 시대로 그 중 특히 서태지와 아이들의 출연은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문화 대통령으로 불리며 젊은이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던 서태지와 아이들은 그 인기에 힘입어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 4주 연속 1위를 하면서 이제 곧 5주 연속 1위인 골든컵을 달성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인 가운데 생각지도 못하게 서태지와 아이들의 골든컵 달성을 가로막고 1위를 차지한 가수가 있었습니다.

바로 ‘애모’의 김수희 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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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당연히 서태지와 아이들이 1위를 차지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김수희라는 여가수가 1위를 차지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가요계의 충격적인 대사건이었습니다.

그만큼 김수희 씨의 ‘애모’는 너무나도 아름답고 애절한 노래로 대중들의 가슴을 완전히 사로잡으며 90년대에 명곡 중에 명곡이 되었습니다.

당신은 물론 최근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노래방 애창곡이기도 한 이 노래의 폭발적인 인기로 김수희는 그의 연말 최고 가수왕까지 차지하면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가수 김수희는 이 애모 말고도 수많은 히트곡들이 있습니다.

너무합니다, 남포동 부르스, 멍에, 남행열차 등과 같이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던 명곡들을 불렀습니다. 이렇게 최고의 인기를 누리며 화려한 주목을 받았던 김수희 씨이지만 알고 보면 가수 김수희가 아닌 인간 김수희의 삶은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불우한 어린시절

1953년도 부산에서 태어난 김수희는 아버지를 일찍 여인 탓에 여성 혼자의 힘으로 자식들을 양육하는 홀어머니 밑에서 힘들고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습니다.

부산 초량시장에서 포목 장사를 하였던 김수희의 어머니와 당시 일곱 살이었던 어린 김수희는 그때부터 노래에 소질이 있었기에 어머니의 가게 앞에서 ‘굳세어라 금순아’ 등의 노래를 부르며 가게 홍보를 도왔다고 합니다.

어린 꼬마가 귀엽게 노래를 하는 모습에 일부러 공연을 보러 가게에 찾아오는 손님이 있었을 만큼 이미 일곱 살 때부터 타고난 노래 실력을 주변에서 인정받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노래에 천부적인 소질을 보였던 그녀는 좋아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겠지만 무엇보다 여러 명의 조카들까지 부양하기 위해, 홀로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위해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고 합니다.

그런 김수희는 고등학교 때부터 미 8군 무대에 올라가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가수의 화려한 꿈이라기 보다는 당장 하루하루를 살기 위해 부닥쳐야 하는 생계 그 자체였다고 합니다.

여러 곳의 업소를 다니며 노래를 불렀던 김수희 당시 한 푼이라도 더 아끼기 위해 무교동에서 청계천까지 드레스를 걷어붙인 채 이 업소 저 업소를 뛰어다니며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살기 위해 악착같이 강한 생활력이 몸에 배어 있었던 것입니다.

인기 가수들의 노래를 대신해 불러주는 대타 가수로서 변변치 못한 푸대접을 받으며 수 년 동안을 무명 가수로 활동하였던 그녀는 당시 최고의 인기를 끌던 남진, 윤복희와 함께 리사이틀 무대에 오르는 기회를 잡게 됩니다.

결국 그녀는 이들 최고의 가수들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었고 그들의 후원으로 정식 가수로서의 첫 앨범을 발표할 수 있게 되었으니 그 노래가 바로 첫 앨범의 타이틀곡인 ‘너무합니다’였습니다.

하지만 노래가 아무리 좋아도 홍보가 부족했는지 당시 대중들은 김수희라는 가수가 누구인지 전혀 알지도 못했기에 노래를 제대로 들어볼 기회조차 없었고 그리하여 무명의 가수 김수희가 낸 앨범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뜻밖의 기회

그렇게 가수로의 첫 앨범이 실패한 후 그녀는 첫 번째 남편인 이용호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가수로의 꿈을 접고 살기 위해 본격적인 생활 전선에 뛰어들게 됩니다.

파출부일, 빵배달, 골동품 중개상 등 여러 가지 일들을 닥치는 대로 하면서 하루하루 생계를 꾸려가던 중 뜻밖의 희소식이 전해지게 됩니다.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김수희의 ‘노래 너무합니다’의 주인공을 찾는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입니다.

라디오 프로그램의 진행자였던 이종환 씨가 김수희의 ‘너무합니다’를 우연히 듣고 너무나 좋은 곡이라는 극찬과 함께 이 노래를 부른 가수를 급하게 찾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이종환의 소개로 인해 김수희의 이름과 노래는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거기에 이 ‘너무합니다’를 들어본 한 작곡가가 노래에 감동을 받은 나머지 김수희만을 위한 노래를 작곡해서 그녀에게 건네주었습니다.

그 노래가 바로 유명한 히트곡인 ‘멍에’입니다.

1982년도에 발표한 이 노래는 그야말로 선풍적인 인기로 김수희를 단번에 톱스타로 우뚝 솟아오르게 만듭니다.

kbs의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 무려 5주 동안 1위에 오를 만큼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그녀의 노래 이 ‘멍에’를 시작으로 이후에도 남포동 부루스, 잃어버린 정, 남행열차 등 주옥같은 히트곡들을 발표하며 왕성한 가수 활동을 이어나갔습니다.

엉뚱하게 찾아온 시련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이제는 고생 끝에 가수로서 안정적인 인생을 살려나 싶었지만 세상 일이 모두 그렇게 잘 풀릴 수만은 없는지 그녀에게 시련이 찾아오게 되는데 바로 그녀의 남편 때문이었습니다.

화목하지 못했던 그녀의 가정 생활 남편은 일 년에 1~2번 집에 찾아올까 말까 하는 마치 바람 같은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문제는 그가 조폭의 몸을 담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환경에 노출되어 있던 그녀는 엉뚱하게도 대마초 사건에 휘말리게 됩니다. 억울하게 누명을 쓴 사건이었지만 경찰에 출두해 조사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김수희를 비롯한 주병진은 본인의 범죄를 적극 부인하였지만, 나중에 이들은 검찰에 의해 장시간 구금된 상태에서 자술서에 서명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주병진은 “검찰 수사를 받을 때 누님이 곧 결혼식을 올리게 되니, 당황한 나머지 얼떨결에 자인서를 썼어요”, “대마초를 만져본 적도 없기 때문에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죠”라고 고백했습니다.

오늘날처럼 신체 검사를 통해 대마초 양성 반응을 살피는 과학적 수사가 아니라 혐의자를 구금한 다음 장시간 폭언과 협박을 하면서 죄를 추궁하는 것이 당시 검찰의 관행이었습니다.

결국 이 사건으로 인해 김수희는 방송 출연 정지 처분까지 받게 됩니다. 한창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을 때 말입니다. 훗날 재판을 받게 되면서 법원에서 최종적으로 무혐의 판결을 받고 누명을 벗게 되지만 이미 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받게 된 그녀는 그 스트레스 덕분인지 유방암에 걸려 큰 고생을 하게 됩니다.

새 출발

결국 남편과 이혼하여 갈라서게 된 김수희, 재혼할 생각 없이 혼자서 살기로 마음 먹었지만 그녀의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에 마음을 바꾸었다합니다. 제주도에 방송 출연을 하기 위해 방문했다가 지금의 남편인 김태식을 만났다고 합니다.

김수희는 이혼을 한 경험이 있었기에 만남에 조심스러웠다고 합니다. 김태식 역시 초혼에 실패하였기 때문에 신중한 만남을 이어갔고 결국 두 사람은 결혼의 골인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안정적인 가정을 갖게 된 김수희 씨 가정이 편안하면 밖에서의 일도 잘 풀리게 됩니다. 그 덕분인지 이후 그 유명한 곡 ‘애모’를 발표하며 또 한 번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불행은 소리 없이 온다고 애모로 큰 사랑을 받으며 한창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던 중 그녀는 아주 큰 교통사고를 당하게 됩니다.

무려 5톤 트럭과의 추돌 사고로 함께 탔던 운전자가 목숨을 잃을 정도로 심각했던 대형 사고에서 김수희는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질 수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상의 정도가 너무도 심각했고 그녀는 하반신에 마비가 오게 됩니다.

김수희 씨 혼자였다면 아마 이겨내지 못했을 너무도 심각했던 상황 하지만 그녀는 혼자가 아닌 남편이 있었기에 참으로 다행이었습니다.

6 개월간을 햇볕도 못 볼 정도로 아내의 옆을 지키며 정성껏 간호를 해준 남편 심지어 대소변까지 받아내며 병수발을 들었다고 합니다. 처음에 김수희는 남편에게 자신의 치부를 보이기 싫어 음식을 거부하며 상실감에 빠져 있었습니다.

“부부는 전생에 악연이 만나는 것이라며 모든 것을 나에게 맡겨라”라는 남편의 말에 결국 남편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하여 그녀는 빠르게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하반신 마비 증세도 기적적으로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지금 김수희 씨의 남편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노래를 많이 들려주길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