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이혼과 아들을 떠난 보낸 배우 김형자… 안타까운 인생사…

1970년 TBC 공채 10기 탤런트로 데뷔한 김형자는 당시 시대를 앞서간 육감적인 몸매와 큰 키로 남성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1970년대 “이효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이효리가 찍었던 망고 음료 CF의 원조도 바로 그녀였고 젊은 시절 청순하면서도 섹시한 외모로 당대 최고의 비키니 여신이라 불리기도 했으며 또한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씨받이”, “감자” 등 다양한 영화에서도 탄탄한 연기력을 인정받아 제20회, 26회 대종상 여우조연상을 2번이나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그녀는 1970년대와 80년대에 많은 사랑을 받으며 화려한 연예인으로서는 성공적인 삶을 살았지만 밝은 모습 뒤에 감춰진 인간 김형자의 삶은 차마 말하기 힘들정도로 슬픔으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두 번의 결혼과 두 번의 이혼 그리고 살아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뜬 그녀의 두 명의 아이는 여전히 가슴에 상처로 남아 있으며 설상가상 믿었던 아버지와 남편의 혼외자식까지 겪어야만 했던 김형자 그녀의 가슴이 무너지는 인생에 대해 말해보고자 합니다.

긴 글이니 시간 나실때 천천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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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어린 시절

군수 딸이었던 어머니와 부잣집 아들이었던 아버지 사이에 태어난 김형자는 부모님이 1930년대 당시 흔치 않았던 연애 결혼을 했고 그녀의 어머니가 김형자를 임신했을 때 당시 6.25 전쟁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가족들이 대전으로 피난을 가다가 어느 한 집에 숨어 있는데 갑자기 김형자가 배 속에서 나오려고 하자 하늘에는 폭격기가 있으니 까만 천으로 집안을 다 쳐놓고 불빛을 가린 채 그녀를 낳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그녀의 어머니는 딸만 셋을 낳았는데 4번째 임신 때는 배 속에 있을 때부터 분명히 아들 같아서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심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넷째마저 딸이 나오자 “또 딸이야 어휴”라고 한숨을 짓더니 또 딸이지만 그래도 아들 노릇을 하라고 형자 돌림의 아들 자를 사서 “김형자”라 지었고 이후 다섯째도 딸이 나오면서 그렇게 딸만 다섯인 5녀 중 넷째로 김형자가 태어났습니다.

아버지의 외도

전쟁이 끝난 뒤 그녀가 7살 때는 아버지가 사업을 한다며 서울로 올라갔고 그러나 사업을 한다던 아버지는 어느 날부터 가족들과 연락이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아버지를 찾기 위해 7살인 김형자를 데리고 그녀의 어머니가 서울로 올라갔고 서울의 한 다방에서 낯선 여자로부터 현재 아버지가 어디서 누구와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어머니는 어린 김형자의 손을 잡고 어딘가로 가게 됩니다.

그렇게 멋도 모르고 따라간 김형자는 낯선 집 앞에 도착했고 어머니가 문을 여는 순간 한 여자가 아기를 낳은 지 얼마 안 됐는지 몸조리하며 누워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아버지가 바람을 피운 것도 모자라 외도로 낳은 아이였고 그 순간 어머니는 보자마자 신고 있던 고무신으로 그 여인을 마구 때리기 시작했고 그 이후로 아버지를 단 한 번도 볼 수 없었습니다.

사실 그녀의 어머니가 결혼할 때 집에서는 그렇게 반대했으며 그런데도 정말 죽어서라도 사랑하는 사람이라며 결혼을 했는데 그러나 그렇게 배신을 당하니까 이후 아버지가 몇 번 집으로 찾아왔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절대로 아버지를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이후 아버지 없이 어머니가 홀로 다섯 딸을 키웠으며 단칸방에 여섯 명이 지그재그로 잠을 자야 할 정도로 힘겹고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배우의 길을 선택

그리고 혼자 딸 다섯을 키우던 어머니는 여전히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가장으로서의 부담으로 울화가 치미는 일이 찾았고 그런 모습을 자주 보던 김형자 그녀는 어머니를 돕기 위해 우선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배우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고 한 편 그녀가 배우로 데뷔할 당시 서구적인 외모로 남자들이 줄을 설 정도였고 하루는 명동에서 무교동으로 걸어가는데 한 남자가 김형자가 마음에 든다며 쫓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지금은 피서를 가야 하니까 나중에 다방에서 보자고 했으며 그러다 1년 정도 후 TBC 방송국에서 그때 그 남자와 다시 재회하게 되는데 그 남자는 바로 이덕화였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1970년 TBC 10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그녀는 앞서 얘기한 대로 청순한 외모와 큰 키 육감적인 몸매로 큰 사랑을 받았고 또한 드라마 같은 정극도 뛰어났지만, 예능에도 소질이 있었던 그녀는 방송사에서 그녀에게 별의별 걸 다 시키기도 했습니다.

첫사랑 그리고 결혼

그리고 한편 당시 그녀가 결혼까지 약속했던 첫사랑의 남자가 있었는데 그러나 그 남자의 어머니가 우리 집안에 딴따라는 안 된다며 극심한 반대를 했습니다. 그때 너무 속이 상한 그녀는 “너희 집에서 날 반대해 어디 두고 보자”라며 이를 갈았으며 본인의 말에 의하면 그 남자와의 이별 후 홧김에 첫 번째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한편 그 첫사랑의 남자를 30년 뒤에 우연히 만난 적이 있는데 30년이나 흘렀는데도 예전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김형자 그녀는 굉장히 좋았으며 그러던 중 그녀가 교통사고가 나서 집에 누워 있는데 갑자기 그 남자가 생각이 났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아픈데 와줄 수 없나 싶어서 그 남자에게 전화를 걸었는 데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자 그녀도 모르게 전화를 확 끊어버렸고 그러고는 며칠 있다가 그 남자의 소식을 들었는데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고 했습니다.

당시 그 남자의 친구들을 김형자 그녀가 알고 있어서 소식을 알 수 있었으며 너무 사랑했던 사람이라 우연히 만났던 그날 그냥 가라고 보냈던 게 너무 아쉽고 지금 생각해도 한 번 껴안아 볼 거라는 생각에 후회스럽다고 했습니다.

두번의 유산 그리고 남편의 외도

아무튼 돌아와 첫사랑과의 이별 후 첫 번째 남편 영화배우 김명수와 결혼을 했지만 8년 만에 헤어지게 되는데 그 8년간의 결혼 생활은 김형자 그녀에게 있어서 그야말로 불행 그 자체였습니다. 당시 둘 사이에 임신을 두 번이나 하기도 했지만 한 명은 뱃속에서 채 나오기도 전에 생명줄을 놓았고 다른 한 명 역시 낳자마자 숨을 거두는 슬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더 큰 괴로움은 첫 번째 남편의 외도였으며 당시 방송국 관계자를 비롯해 김형자를 제외하고 모두 그녀의 남편 외도를 알고 있었고 심지어 결혼 20일 만에 혼외 자식을 낳기도 했습니다. 당시 너무 놀란 그녀는 온몸에 힘이 풀리고 사지가 떨렸으며 이런 남편의 과거는 수습할 수 없었기에 빨리 결단을 내리고 이혼을 했어야 했지만 그놈의 방송이 뭔지 당시 이혼하면 연기 생활을 중단해야 한다는 생각에 8년이란 시간을 참고 살아야만 했습니다.

설상가상 남편은 훗날 상의도 없이 혼외 자식을 호적에 올렸고 그걸 발견한 그녀는 8년간 “참아야지 참아야지 참아야지 하다” 이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참다 못해 결국 8년 만에 파경을 맞이하게 됩니다.

4살 연하의 마마보이와 재혼

그렇게 헤어질 당시 이제는 남자에 대한 모든 기대를 접고 혼자 살겠다고 다짐했지만 외로움과 새로운 삶을 향한 꿈에 그녀는 다시 흔들렸고 결국 3년 만에 두 번째 남편과 재혼하며 또다시 잘못된 선택을 하고 말았습니다. 두 번째 남편은 첫 번째 남편과 완전히 반대로 응석받이 기질이 다분했던 4살 연하의 마마보이였고 사는 동안 남편의 경제적인 문제가 끊임없이 이어져 또다시 헤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심지어 두 번째 이혼할 당시에도 남편이 진 빚을 다 갚아주고 혼자 살 수 있게끔 집과 살림살이까지 마련해 주며 헤어졌으나 남편은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은 지 한 달 만에 다른 여자와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이렇게 아버지의 외도와 자신 또한 두 번의 사랑에 실패하면서 그녀는 솔직히 남자라면 이제 징글징글하다며 다시 누군가를 만나면 과거의 상처와 아픔이 되살아날 것 같아서 이젠 사람을 만나는 것이 무섭기까지 하다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마지막으로 그녀가 고백하길 “어느 집이나 보면 근심 걱정이 한 가지씩 있다. 우선 가족들이 건강해야 하는데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 있으면 온 집안이 다 우울하다. 그래서 돈이 많은 집은 항상 건강이 안 좋은 집들이 많은 것 같고 반대로 돈이 없으면 또 없는 대로 지지고 볶고 또 자식이 속 썩이지 않으면 부모가 아프거나 그러고 그래서 집집마다 뭔가 꼭 걸리는 것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이제 나만 생각하면 되고 나만 건강하면 되고 나를 위해서 살면 되니까 다른 것에 대해서는 걱정이 하나도 없어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저 사람은 어떻게 혼자 살까 너무 외롭지 않겠느냐고 그러지만 건강하고 경제적인 것들이 허락되면 혼자 살아도 감사하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